김종민 의협 보험이사
김종민 의협 보험이사

수술실은 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성형외과 등 외과적 치료가 이뤄지고, 감염 예방을 위해 출입이 통제되는, 고유의 ‘밀실성’이 보장된 특수 공간이다.

또, 수술실의 모든 과정은 환자의 생명과 예후 그리고, 삶의 질에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집도의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특별한 영역’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것에 대해 한국은 지금, 뜨거운 논쟁 중이다.

2016년 고(故) 권대희 씨가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 후 사망한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수술실 CCTV가 대리ㆍ유령 수술의 실체를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이 논쟁의 계기가 됐고, 이후 환자단체는 수술 관련 의료사고나 대리 수술에 대한 공익제보 사례가 나타날 때마다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특히 최근 보도된 인천과 광주 척추ㆍ관절 전문병원에서의 대리 수술 사건은 오랜 기간동안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한국 의료계의 신뢰를 실추시킴으로써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반대 논리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동안 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에서는 ‘CCTV 만능주의’를 경고하며 CCTV가 만들어 낼 여러 부작용들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고 설치 의무화가 선행된 어린이집 CCTV의 예를 들어 CCTV의 설치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 사건이 증가했다는 사실은 역기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해왔다.

실제 어린이집 CCTV 설치는 범죄예방 효과는 미비하고 사후 증거를 위한 입증 자료로서의 효과가 더 크며, 교사들이 감시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교권 침해로 인한 부정적 정서를 강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

결국 신뢰와 정성을 바탕으로 성장해야 할 교육 환경이 감정의 교류없이 자기방어적 태도로 변질될 것이라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우려섞인 예측이다.

교육과 의료에는 ‘신뢰’라는 공통의 키워드가 존재한다. ‘신뢰’를 통해, 단순히 의료비나 교육비로 계산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가 발휘돼야 최상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따라서 CCTV 의무설치가 교육의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역기능의 모습을, 수술 의료의 현장에서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서글픈 예측을 아니할 수 없다.

대리 수술의 문제는 환자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치료 계약의 위반이며 전문가집단인 의사 전체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치명적인 반동료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협회는 이를 반드시 근절해야 할 의료 해악으로 규정하고 면허관리 및 전문가평가제(동료평가제)를 통한 내부 규율강화를 주장해왔고 변호사협회처럼 자율징계권을 통한 적극적 제재를 현실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수술 시각에 집도의가 직접 참여했음을 인증하는 수술팀 타임-아웃제 운용도 제안했고, 홍채인식이나 지문인식을 이용한 바이오 인증의 도입도 CCTV의 효능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됐다.

그렇다면 왜 의사들은 대리 수술을 비판하고 근절을 외치면서도 CCTV 설치라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 수술실 CCTV 의무 설치가 현실화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그동안 의료계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영상 누출로 인한 더 큰 인권의 침해’, ‘의료인의 인격권 및 직업 수행의 자유 침해’, ‘불필요한 의료 분쟁의 확대’보다 더 크고 심각한 사회 문제를 생각한다.

바로 필수 의료 분야에서 수술 문화의 변화를 말하고자 함이다. 대리수술은 엄밀히 말해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의료 영역에서는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문제였지만 수술실이라는 공통의 공간에서 발생했던 불법행위인 점으로 인해 모든 수술실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법안까지 발의된 상황이다.

수술실 CCTV의 설치 의무화의 의미는 정확한 판단이 요구되는 암 수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대량 출혈을 막아야 하는 혈관 수술, 분ㆍ초를 다투는 긴박한 응급 외상수술에서도 예외는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즉, CCTV 환경에서 녹화된 수술의 모든 과정은 의사에게는 소명해야 할 의무로, 반면 치료에 만족하지 못한 환자 측에게는 불필요한 의문만 갖게 하는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

그리하여 집도의는 수술 중 선택의 순간에 근치적이지만 위험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 방법보다 좀 더 보존적인(비근치적) 방법을 택해 분쟁을 피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수술 경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모든 수술 의사에게 공통의 문제가 될 것이며 결국 만성적인 수술 문화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수술실 CCTV 의무 설치에 대해 전공의를 포함한 외과계 의사들에게 설문을 시행한 결과 80%가 반대했으며, ‘본인 가족의 수술이라도 반대하겠는가?’라는 질문에도 78%가 역시 반대 의견을 표한 것을 볼 때 CCTV가 집도의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 인자인지 가늠할 수 있다.

CCTV로 시작된 수술 문화의 변화는 외과, 흉부외과 등의 필수의료 분야에 전공의 지원율을 더 떨어뜨릴 것이 확실하며 힘든 수술을 기피하고 환자중심보다 자기중심적인 의사를 양성하는 결과를 가져와 마침내 의료서비스의 질을 후퇴시킬지도 모른다.

우리는 CCTV의 즉각적인 효과만 생각하기보다 한국 의료의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파장에 대해서 반드시 생각해봐야 하고, 어느 것이 더 선진국을 지향하는 한국 사회에 적합한 지 냉정한 판단을 할 시점이다.

무릇 법과 물리력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선진 의료사회의 구현을 위해서는 의료계 스스로의 반성과 정화, 그리고 의사-환자 간의 자발적 신뢰 관계 유지를 위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논의는 사건의 재발을 막는 차원을 넘어 의료 문화에 끼칠 영향까지 고려한 깊이 있는 토론과 충분한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