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6개 유형의 공급자단체와의 협상이 거의 모두 결렬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로 종결되게 된다면, 현재와 같은 수가결정방식이 의미가 있겠나?”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 윤석준 위원장(고려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최근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의료정책포럼에 기고한 ‘건강보험 수가계약제도의 현재와 개편 방향’ 글을 통해 건강보험 수가계약 과정의 문제점을 짚었다.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제도는 행위별 수가제를 보수지불제도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일부분 병행해 보수지불제도가 존재하나 거의 90% 이상은 건별 행위에 따른 가격이 정해져 있는 행위별 수가제가 활용되고 있다.

건강보험 수가제의 가격은 상대가치점수(resource based relative value scale, RBRVS)와 그 점수당 단가인 환산지수(conversion factor, CF)의 곱셈으로 결정된다.

상대가치점수 당 단가를 의미하는 환산지수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5조와 동법 시행령 제20조와 제21조에 의해 매년 5월 31일까지 의약단체 협상 및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 심의ㆍ의결을 거쳐 환산지수 계약을 체결한다.

만약 협상에 따른 계약이 결렬될 경우 6월 30일까지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돼 있다.

윤 위원장은 “현재와 같은 수가결정 방식은 가입자와 공급자 간에 보험자를 매개로 협상의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형식적인 측면에서 진일보한 제도라고 판단한다. 현재 필자가 인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협상 방식의 의사결정을 갖추고 있는 사회제도는 건강보험수가결정과정과 최저임금제 결정방식이다.”라고 평가했다.

윤 위원장은 “최저임금제가 산업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 국민의 삶과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 그 협상의 결과 또한 파급력이 크다. 건강보험수가도 그 영향력은 단지 병원과 의원을 운영하는 공급자뿐 아니라 건강보험료와 연동돼 거의 전 국민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라고 밝혔다.

윤 위원장은 “독일처럼 오랜 시간 축적된 협상의 전통이 부족한 대한민국 사회구조를 고려할 때 협상은 합리적인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며 의사결정을 하기보다는, 응집력이 강한 단체나 직역의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될 소지가 있다.”라며, “이런 사회 환경일수록 의사결정을 위한 객관적이고 근거 있는 기준점에 관한 자료가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수가결정과정에는 이러한 객관적인 기준점이 흔들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윤 위원장은 “SGR 모형 자체가 최근 미국에서 폐기됐다고 해서 한국에서 전혀 의미 없지는 않다.”라면서도, “가장 큰 문제는 지난 10여 년간 SGR 모형을 활용한 수가결정 과정에서 일관되게 지켜진 원칙이 없다는 점이다.”라고 우려했다.

윤 위원장은 “무슨 이유에서였던 간에 과거 SGR 연구를 통해 수가 인하를 권고 받았을 때도 환산지수가 2.0을 넘은 경우가 드물지 않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협상 과정은 기준점 없이 협상 당사자들의 주장에 치우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윤 위원장은 “매년 힘들게 6월 1일 밤을 지새우고 수가협상을 끝내고 나면 보험자나 정부 관계자도 탈진해서 당분간 제도 자체를 돌아보지 않게 된다. 일종의 불편한 사이클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라며, “하지만 수가협상이 완료된 후 환산지수 관련 새로운 기준점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SGR 방식의 일부 보안이 됐든, 아니면 새로운 수가결정방식을 개발하는 방식이 됐든지 간에 새로운 기준점을 찾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소모적인 수가결정방식은 되풀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주장했다.

협상 방식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꼽았다.

윤 위원장은 “매년 수가협상과정이 지루하게 반복되면서 일종의 불필요한 관행이 자리 잡았다. 공급자단체의 입장에서는 가장 늦게까지 버티는 방식을 택하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5월 31일까지 결정돼야 할 수가협상이 매년 밤을 새우고 6월 1일 새벽에 결정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고, 가입자단체의 경우 기준점을 찾는 노력을 위해 보다 열린 자세로 접근하기보다 가입자단체만의 합의에 의해 의사결정하려는 경향이 반복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6개 유형의 공급자단체와의 협상이 거의 모두 결렬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로 종결되게 되면, 현재와 같은 수가결정방식이 필요할 지가 의문이다.”라며, “2022년 수가결정과정에는 보다 근거 있는 지표를 바탕으로 관계자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합리적인 수가협상이 이뤄지길 바란다.”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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