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의료계와 한의계가 한의사의 혈액검사 가능 여부를 두고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의계는 지난해 3월 이미 보건복지부가 한의사도 혈액검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의료계는 그 답변에 따르더라도 한의사는 적혈구수치, 간수치 등 현대의학적 혈액검사가 아닌 어혈의 모양 등 한방원리에 의한 혈액검사만 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보건당국이 지난 2011년에는 한의사의 혈액검사는 불가능하다고 해석했다가 2014년에는 다시 가능하다고 말을 바꾼 부분이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 헌법재판소의 안압측정기 판결에 준해서 입장이 바뀐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한의사 혈액검사 논란 전개상황과 의료계, 한의계, 복지부의 입장을 살펴봤다.

▽오락가락한 복지부 유권해석
복지부는 지난 2011년 다섯 차례에 걸친 유권해석에서는 한의사가 혈액검사를 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지난 2011년 복지부가 한의사의 현대의학적 혈액검사는 불가능하다고 유권해석한 내용  
지난 2011년 복지부가 한의사의 현대의학적 혈액검사는 불가능하다고 유권해석한 내용  

실제로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이하 한특위)가 지난 2011년 한의사의 채혈과 혈액검사 및 검사비용 임의비급여의 불법 여부에 대해 문의하자, 복지부 한의약정책과는 7월 22일 “양방의학적 이론에 의한 혈액검사와 같은 의료행위는 한의원에서 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같은 해 9월 2일에도 한의약정책과는 “혈액검사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의학적 검사인 혈액검사, 소변검사, 임상병리검사 등과 같은 검사는 한의사가 직접 할 수 없다.”라고 확인해 줬으며, 10월 11일에도 “한의사의 의학적 검사적법 여부를 묻는 민원에 대해 의료법 제2조 및 제27조에 근거해 면허된 의료행위 범위를 벗어나는 검사를 직접 할 수 없다.”라고 분명히 했다.

한의약정책과 뿐 아니라 보건의료정책과도 2011년 12월 6일 “한방의료행위로 보기 어려운 의과적 검사 등을 위한 채혈은 의료법 제2조제2항의 한의사의 면허범위 내 행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간호조무사의 채혈행위와 관련해서도 보건의료정책과는 “의료법 제27조제1항에서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한의사 또는 한의사의 지시 하에 간호사 등이 한방의료행위로 보기 어려운 간기능 검사 등을 위해 채혈을 하는 것은 의료법에 저촉될 수 있다.”라고 해석했다.

복지부가 지난해 3월 한의협에게 전달한 ‘한의사 혈액검사기 사용 가능’ 공문
복지부가 지난해 3월 한의협에게 전달한 ‘한의사 혈액검사기 사용 가능’ 공문

하지만 2014년 3월 대한한의사협회가 질의한 ‘한의사가 혈관 등에서 혈액을 뽑아 검사결과가 자동으로 수치화돼 추출되는 혈액검사기를 사용해 진료하는 행위가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복지부의 답변이 뒤집어졌다.

당시 복지부 한의약정책과는 “채혈을 통해 검사결과가 자동적으로 수치화돼 추출되는 혈액검사기를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같은 해 한특위가 ‘한의사가 직접 혈관 등에서 혈액을 뽑아 검사결과가 자동으로 수치화돼 추출되는 혈액검사를 사용해 진료하는 행위와 한의사가 자동혈액검사기기를 이용해 콜레스테롤, 간기능, 당뇨, 빈혈검사 등을 시행하는 것이 의료법에 위반되지 않느냐’고 질의한 데 대해서도 12월 26일 “채혈을 통해 검사결과가 저동적으로 수치화돼 추출되는 혈액검사기를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판단된다.”라며, 같은 답변을 전했다.

▽한의계-의료계의 상반된 풀이
이 같은 복지부의 답변을 두고 한의계와 의료계는 상반된 해석을 내놨다.

한의협은 지난 24일 “일부 의사들이 한의사에게 혈액검사기 등을 허용할 경우 ‘무기한 전면파업’을 운운하는데, 이미 복지부가 2014년 유권해석을 통해 한의사도 혈액검사기 사용이 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라며, “일부 의사단체와 의사들이 혈액검사기에 대한 한의사들의 사용권한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의협은 “복지부의 이 같은 유권해석이 내려진 시점은 현 의사협회장 임기도 아닌 노환규 전 회장의 임기 중에 결정된 것이다.”라며, “이미 혈액검사는 한의사가 진료를 위해 사용할 수 있으며, 만약 이번 논의 과정에서 혈액검사기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면 그것은 급여, 비급여 행위 고시를 위한 수순이 돼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한의협은 “복지부는 이미 혈액검사기를 한의사가 진료에 활용할 수 있도록 결론 낸 것처럼 파업 운운하는 의사단체의 협박에 신경 쓰지 말고 국민의 뜻에 따라 한의사가 국민에게 보다 정확한 진단과 안전한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루 속히 엑스레이 등 다른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규제 역시 개혁해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미 지난 1월 반박 보도자료를 냈던 사안에 대해 한의사가 다시 물타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특위는 “복지부가 지난해 3월 한의사가 자동혈액검사기를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항목을 검사할수 있는지는 전혀 지정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지난 2011년 이미 복지부가 ‘한의사의 현대의학적 혈액검사는 불가능하다’고 유권해석하면서 가능한 것은 어혈, 점도 등의 검사라고 했던 만큼, 지난해의 유권해석도 ‘한의사도 자동 혈액검사기를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의사들이 하는 현대의학적 검사(적혈구ㆍ백혈구수치, 간수치)는 불가능하고 어혈 모양, 점도 등의 한방원리에 의한 검사에 국한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한의협이 혈액검사의 근거로 삼고 있는 지난해 3월 복지부의 유권해석 자체에 대한 문제점도 거듭 제기된 바 있다.

한특위 관계자는 “유권해석에 ‘채혈한 후 자동화장비 사용’이라고 표현했으나, ‘채혈’이라는 행위 자체는 침습적인 의료행위이고 결과 판정 및 해석에 잘못이 생기면 국민건강에 위해가 가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말하는 보건위생상 위해의 의미가 검토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기존 판례와 2014년 IPL판례에서도 인용한 ‘학문적 원리’가 중요한데도 2013년 헌재 결정만 참고하고 있다.”면서, “2011년 등 과거에 복지부가 했던 유권해석을 무시한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답변시 혈액검사의 전문가 단체인 진단검사의학회와 내과학회 등의 자문을 통한 충분한 검토가 없었고, 한의사가 한방의료행위가 아닌 채혈을 할 수 있다는 근거는 무엇이냐고 반박했다.

법무법인 ‘로앰’ 역시 올해 1월 법률자문을 통해 “혈구 수나 기능, 각종 항체, 항원의 유무를 통해 질병을 진단하는 것은 혈액검사를 통해 기계적으로 그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전문적인 지식에 따라 검사결과를 통합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점, 혈관으로부터 혈액을 채취해 기계에 넣고 분석을 하는 검사방법이나 그 검사수치를 보고 진단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일련의 의학적 사고도출 과정들은 모두 우리의 옛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해석했다.

또한 혈액검사는 해부학에 기초를 두고 인체를 분석적으로 보는 서양의학에 근거를 둔 검사 방법으로써, 이와 같은 검사 및 해당 검사를 바탕으로 한 진단행위, 또한 위와 같은 검사 및 진단을 위한 채혈행위는 한의사에게 면허된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특위 관계자는 “혈액검사는 단순히 검사결과만 안다고 해서 결과 판정이 가능하고 환자 치료에 도움되는 것이 아니며, 학문적 원리도 생화학, 해부학, 병리학, 미생물학 등의 현대의학이 그 근본이 되므로 한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가 아니다.”라며, “한의약정책과에서 기존의 유권해석을 부정하고 새로운 유권해석을 내리는 절차와 경과에 문제가 많으므로 반드시 기존 유권해석으로 환원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의사 혈액검사, 대통령 한마디로 시작?
최근 의료계는 한의사의 혈액검사를 비롯한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 주장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됐다면서, 국민건강에 위해가 되는 사안을 대통령이 밀어 붙이고 있다는 방향으로 투쟁 프레임을 짜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지난 2013년 10월 청와대에서 중소기업인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한의사가 채혈조차 못하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지난 2011년 방영된 케이블방송 프로그램 중 한의사가 채혈검사를 하는 모습
지난 2011년 방영된 케이블방송 프로그램 중 한의사가 채혈검사를 하는 모습

당시 오찬에서 최주리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박 대통령에게 한의사의 현대 진단기기 사용을 요청 했고, 대통령은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관계자에게 지시했다.

최주리 이사장은 “한의약산업은 한의사 뿐만 아니라 한약재배 농민, 한방제약회사, 의료기기 업체 등 관련 산업이 연관돼 있는 전방위적인 산업이지만, 일부 한의약에 대한 근거없는 폄훼로 인해 한의약산업이 위축되고 있다. 한약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을 해결하고자 혈액검사를 실시하려고 해도 한의사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라며, “한의약의 현대화와 한의약산업의 신뢰성 제고를 위해 각종 규제를 풀어주길 바란다.”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한의약은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며, 이를 육성시켜 해외에 수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라며,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면서 (한의사가) 채혈조차 못하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정부에서도 갈등을 잘 조정해서 무조건 안된다고 하지 말고, 방법을 찾아 해결하라.”고 청와대 관계자에게 지시했다.

이후 같은 해 12월 헌법재판소에서 한의사의 안압측정기 사용 가능 판결이 나오고, 복지부도 이를 근거로 과거의 한의사 혈액검사 불가 방침을 바꿔 허용으로 선회한 것이다.

▽복지부 “헌재 기준, 한의사 자동혈액검사기 사용 가능”
의료계와 한의계의 대립이 지속되는 가운데, 보건당국은 지난 2013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준해 한의사도 자동혈액검사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복지부 한의약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3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의사의 혈액검사 가능 여부에 대해 지금 뭐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는 참 어렵다.”라면서도, “지난 2013년 헌재의 안압측정기 판결의 연장선상에서 한의사도 자동혈액검사기에 한해서는 사용할 수 있다고 회신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보건위생상 위해를 가할 우려가 없고, 작동이나 결과 판독에 한의사의 진단능력을 넘어서는 전문적인 식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헌재의 판결취지 및 한의과대학 교과과정, 그리고 현대의학의 발전에 따라 의과-한방 의료간의 진료방법 및 치료기술이 점차 접근돼 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채혈을 통해 검사결과가 자동적으로 수치화돼 추출되는 혈액검사기를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헌재의 판결내용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인 판단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라며, “그 연장선상에서 자동적으로 수치화되는 검사기기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 측면에서 유권해석한 것이다.”라고 전했다.

지난 2011년 밝힌 ‘한의사의 혈액검사 불가능’ 입장이 2013년 헌재 판결 이후 바뀐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시대적인 상황이 변했다. 헌재 판결이 그렇게 나왔기 때문에 우리도 가장 최우선적으로 참고할 수 밖에 없다.”면서, “헌재 판결의 연장선상에서 특정 기기를 지목한 것은 아니고, 일단 자동수치화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다고 회신한 것이다.”라고 부연했다.

그는 “물론 의사들과 한의사들이 보는 측면이 서로 다를 수는 있겠지만, 복지부 입장에서는 헌재 판결을 가장 중요시할 수 밖에 없고, 그 연장선상에서 봤을 때는 한의사도 자동적으로 수치화되는 것들은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복지부가 지난 2011년 자신들이 내린 유권해석을 부인하고, 2013년 헌재 판결 이후 입장이 바뀌었다고 인정함에 따라 한의협의 손을 들어준 꼴이 됐다.

하지만 한의사가 할 수 있는 자동혈액검사 항목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한 상황이다. 의료계가 한의사는 자동혈액검사기를 사용하더라도 현대의학적 혈액검사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향후 복지부가 발표할 구체적인 입장에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