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치료법을 표방하며 백신 접종 및 항생제 사용 지양을 주장해온 온라인 카페가 최근 논란이 됐다. 한의사가 운영한 이 카페 이름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병을 앓도록 둬야 한다고 주장해 오던 이 카페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문을 닫았다. 그러나 최근 ‘안전하고 건강하게 아이 키우기’라는 이름으로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염병 분야 국제 학술대회(ISAAR&ICIC) 참석차 방한한 줄리오 알베르토 라미레즈 박사(미국 루이빌 의과대학 감염내과 분과장)를 만나 안아키, 백신 접종 등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SNS에서 논란이 된 안아키 사례들
SNS에서 논란이 된 안아키 사례들

▽안아키 논란, 관련법도 발의
지난 2013년 한의사 김효진 원장(54ㆍ대구 살림한의원)이 개설한 ‘안아키’ 카페는 ‘자연주의 치료’를 표방하며 6만명이 넘는 회원을 모았다.

환경 문제에 민감한 젊은 부모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까지 터지자 ‘자연주의 치료’에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안아키에서 회원들은 화상을 입었을 때 찬물 대신 온수로 씻어 낼 것, 아토피가 있어도 스킨과 로션 등을 사용하지 말 것, 설사와 복통 등 장질환에는 숯가루를 먹일 것, 소금물 혹은 재래간장을 섞은 물로 비강세척을 할 것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자연치유’ 방법을 공유하고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필수 예방접종까지 거부해 주위에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안아키 회원들은 예방접종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을 이유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필수로 접종해야 하는 예방접종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자 최근 국회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아동의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부모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박인숙 의원(바른정당)은 “안아키와 같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자연치유법은 백신이 발견되기 이전인 1800년대에 유행했던 치료법과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두는 전염성이 강하고 세균감염, 폐렴, 뇌염 등 치명적인 합병증이 생길 수 있는 질병이며, 예방접종을 안 하는 사람이 늘면 퇴치에 성공한 감염병이 다시 대유행 할 수 있다.”라고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박 의원은 또 “예방접종이나 진료를 거부하는 일부 부모들의 행위는 접종을 받지 않은 아동의 건강은 물론 같은 어린이집 등에서 생활하는 다른 아동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면서, “이번 개정안을 통해 전염병으로부터 아동과 공동체의 건강을 보호하고자 한다.”라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줄리오 알베르토 라미레즈 박사
줄리오 알베르토 라미레즈 박사

▽글로벌 감염병 전문가 “잘못된 일” 일침
글로벌 감염병 분야 전문가인 줄리오 알베르토 라미레즈(Julio Alberto Ramirez) 박사는 폐렴구균 폐렴을 예로 들어 안아키 이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라미레즈 박사는 미국 루이빌 의과대학 감염내과 분과장이며, 내과의사이자 전염병 관련 연구 분야의 전문가다.

라미레즈 박사는 미국 흉부학회 위원으로 지역획득성폐렴 관리를 위한 미국 국가 가이드라인 개발에 참여했으며, 감염병 대비 약제 승인을 위한 미국 FDA 자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라미레즈 박사는 “어릴 때 수두에 감염된 어린이와 함께 생활해 일찍 수두를 일으키는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노출시켜 면역력을 높이려는 시도는 전세계적으로도 있었던 사례다.”라고 말했다.

단, “과거에는 어렸을 때 수두에 걸리는 것이 나이 들어 걸리는 것보다 증상의 중증도가 훨씬 덜 하기 때문에 일찍 걸리도록 하는 낫다고 판단하거나,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한 종류이기 때문에 그 바이러스에 한 번 노출되면 항체가 생겨 다시는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폐렴구균,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등 세균의 이름은 하나이더라도 이 균은 하나의 균종을 뜻하는 것이지 같은 균종의 모든 세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2세 아이가 폐렴구균 폐렴에 감염됐다가 잘 극복했다면 당시 걸렸던 혈청형에 대한 항체가 생긴 것은 맞지만 나머지 90여 개의 폐렴구균 혈청형 모두에서 항체가 생긴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순하게 보면 앞으로 폐렴구균 폐렴에 걸릴 가능성이 90번은 더 있다는 설명이다.

라미레즈 박사는 “폐렴구균 폐렴이 아닌 다른 종류의 폐렴까지 고려하면 200여 종의 원인균까지 가능성은 늘어난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루이빌 의과대학병원에서도 폐렴구균 폐렴 혹은 폐렴에 감염된 적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환자들이 있었지만 이는 결코 옳지 않은 말이다.”라고 강조했다.

▽백신 접종, 질병부담 감소 이견의 여지 없다
라미레즈 박사는 백신이 질병부담을 감소시킨다는 것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폐렴구균 백신의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소아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프리베나13(PCV13) 접종군에서 폐렴구균 폐렴의 질병부담을 확실하게 감소시켰음을 밝힌 데이터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는 CAPiTA 연구가 있다.”라면서, “CAPiTA 연구 결과, 65세 이상 성인에서 폐렴구균 폐렴의 예방효과가 50%로 확인됐다. 낮은 수치처럼 보이겠지만 훌륭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라미레즈 박사는 “성인, 특히 65세 이상 고령의 경우 면역체계가 무너지는 항체 생성이 소아에 비해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100%의 예방효과를 얻기 어렵다.”라면서, “성인에서는 소아와 예방접종 효과에 대한 기대치를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성인에서는 예방접종을 했더라도 병에 걸리는 사람이 발생할 수 있지만, 균혈증 등 중증의 폐렴구균 질환의 발생률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는 설명이다.

특히, 질환 발병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발병이 됐더라도 중증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백신의 효과라고 강조했다.

▽인플루엔자 못지 않게 폐렴도 관심 가져야
라미레즈 박사는 환절기 대표적인 호흡기 질환 중 하나인 폐렴의 심각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견해도 내놓았다.

그는 “인플루엔자의 경우 다른 병원체들에 비해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아왔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매년 발생하는 바이러스가 조금씩 바뀌고 있어 백신 개발 및 제조에 있어서도 달라지는 바이러스를 최대한 맞춰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바이러스의 변화가 20~30년 주기로 크게 바뀌면서 기존의 백신이 효과가 없게 되거나 갑자기 대유행이 발생하며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기도 해, 인플루엔자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라며, “예를 들어 스페인 독감으로 수백 명이 사망한 사례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폐렴 등 폐렴구균 질환의 경우 발병률이 급증해 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례가 없었다 보니 상대적으로 인식이 낮고 정부의 노력도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다.”라면서, “폐렴구균 질환에 대한 교육 등 인지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라미레즈 박사에 따르면, 폐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 금연, 절주, 적절한 운동 등 종합적인 접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예방접종이 중요하다.

만약 자원이 부족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어렵고 예방사업을 특정 집단에 집중해야 할 경우, 상대적으로 폐렴의 발병률이 높은 지역이나 집단 혹은 특정 만성질환, 면역저하자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라미레즈 박사는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고령자에게 PCV13(13가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과 PPSV23(23가 폐렴구균 다당질백신) 두 백신 중 PCV13이 항체 형성 효과가 더 우수하고 특히 폐렴구균으로 인한 질환의 대부분인 폐렴에 대한 예방효과가 탁월하다고 판단해 우선 접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단, “PPSV23이 더 많은 혈청형을 포함하고 있으니 PCV13에 없는 혈청형에 대해 예방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PCV13을 접종한 뒤 PPSV23을 접종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라면서, “미래에 PCV23(23가 폐렴구균 단백접합백신)이 출시된다면 1개 백신을 접종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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