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이른바 ‘한의사 의료기기법’에 대한 논의에 돌입한 가운데, 법안이 통과돼도 한의사가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근거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와 주목된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위원장 양승조)는 지난 20일 전체회의에 관련법안 2건을 상정해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했다.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보건복지위는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해 162건의 법률안을 심사한 후 24일 전체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다. 한의사 의료기기법 두 건은 각각 107,108번으로 상정된다.

자유한국당 김명연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각각 지난 9월 6일과 8일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책임자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내용이다.

김명연의원안은 한방의료행위에 사용되는 장치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책임자에 한의사가 포함됨을 명시하도록 했고, 인재근의원안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책임자를 의료기관 개설자가 의료인인 경우 해당 의료인으로, 비영리법인 등 비의료인인 경우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상임위 전문위원실은 입법취지를 달성하기 위한 개정안의 입법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석영환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은 “두 건의 개정안은 직접적으로 한의사에게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사용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규정하지 않고,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안전관리책임자에 한의사를 포함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라며, “그러나 안전관리책임자는 해당 의료기기의 안전한 사용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자일 뿐, 이 규정이 곧바로 해당 의료기기의 사용 권한을 부여하는 근거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김명연의원안은 현행과 같은 체계에서 ‘한방의료행위에 사용되는 장치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라는 일정 범주의 의료기기에 대해서만 한의사에게 사용권한을 부여하고 있는데, 현행법상 ‘한방의료행위’라는 정의규정이 없으므로 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한방의료행위에 사용되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범위를 특정할 수 있는지,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선행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인재근의원안의 경우 현행과는 달리 의료인이 의료기관 개설자인 경우에는 해당 의료인을 안전관리책임자로 하고, 의료기관 개설자가 비영리법인 등 비의료인이거나 추가적으로 선임하려는 경우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령상 안전관리책임자의 직무가 안전관리업무의 계획ㆍ점검ㆍ평가, 관계종사자에 대한 훈련, 설비의 안전관리 등 전문적 업무라는 점에서 의료기관 개설자로 특정한다면 전문성에 기반한 안전관리 및 의료기관 운영의 효율성이 다소 저해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석영환 수석전문위원은 또, 법안 검토시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학문적 원리 ▲한의과의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교육 현황 ▲사용권한과 관련한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위해도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의사에게도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사용권을 부여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한의사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로부터 도출된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해석ㆍ적용해 적절히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지, 이를 통해 국민보건상의 위해 없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다.”라고 강조했다.

그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국회의 압박에도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보건당국은 이번에도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전문가, 이해당사자 등과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환자 중심, 국민건강 증진을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라며, ‘신중검토’ 의견을 내놨다.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의료계와 한의계의 입장은 엇갈렸다.

대한의사협회는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인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사용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로서 의료인의 면허체계에 혼란을 야기하고, 해당 기기 사용시 환자 뿐만 아니라 의료기관 방사선 관계종사자들의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으며,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금지라는 사법부의 일관된 판결에 반하는 것이다.”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병원협회도 ‘반대’ 검토의견을 통해 “진단용방사선 발생장치는 단순 검사ㆍ측정장비와 본질적으로 그 전문지식과 숙련도에서 차이가 있고, 임상현장 및 응급상황에서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판독ㆍ해석능력이 부족한 한의사 등를 안전관리책임자에 포함시키면 적절하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사의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사용은 국민의 건강증진과 국민의 불편 해소 및 한의학의 발전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요구돼 왔으며, 한방의료기관을 선호하는 국민이 엑스레이(X-ray) 사용을 위해 양방의료기관에서 검사를 한 후 다시 한방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 등 이중방문의 불편을 해소하고 국민의 의료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다.”면서, 찬성했다.

의료소비자연대 역시 “의료소비자 또는 환자 수진자의 진료 선택권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진료 방법의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면서, 개정안 내용에 찬성했다.

대한방사선사협회는 ‘수정수용’ 의견을 통해 “의료기관 개설자와 안전관리책임자의 상호 견제를 통해 환자 및 방사선 관계 종사자가 방사선으로 인한 위해를 방지하고 진료의 적정을 도모하려는 현행법 취지에 맞춰 방사선 관계 종사자로 하여금 방사선안전관리책임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한편, 현행법은 의학과 한의학간 면허와 학제, 의료범위 등을 이원화하고 있음에도,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포함한 의료기기의 사용자에 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의료법’ 제37조에 따른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에 관한 규칙(보건복지부령)’ 제10조가 진단용 방사선의 안전관리책임자를 영상의학과 전문의, 의사, 치과의사, 방사선사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한의사에 대해서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사용을 배제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처럼 한의사의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사용 여부는 현재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관련 법령과 여러 가지 제도적 여건을 감안해 선고되는 법원의 판결 및 복지부의 유권해석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종래의 판례 입장을 보면, 어떠한 진료행위가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한의사만이 할 수 있는 한방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결국 해당 진료행위가 학문적 원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등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진단용 방사선 발생기를 사용해 성장판검사를 한 것은 해부학적으로 뼈의 성장판 상태를 확인해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진단하기 위한 것으로, 이에 관해 한의학적 방법이 사용됐다고 보기 어려워 한방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서울행정법원 2008구합11945판결)한 바 있다.

또한 한의사가 CT를 이용해 방사선 진단행위를 한 것은 의학과 한의학은 그 원리 및 기초가 다르고, 해부학에 기초를 두고 인체를 분석적으로 보는 서양의학과 달리 한의학은 인체를 하나의 소우주로 보고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등 인체와 질병을 보는 관점도 달라 진찰 방법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한방의료행위에 포함되기 어렵다는 판시(서울고등법원 2005누1758)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로 학문 영역이 점차 융합돼 그 원리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짐에 따라, 심급에 따라 동일사안에 대한 판단기준이 달리 적용되기도 하고, 또한 이전의 사법적 판단과 경향이 다른 판결을 내리는 등 판례의 태도에 일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현대의료기기인 뇌파계를 사용한 한의사의 진료에 대해 1심(2013년 10월 31일, 2013구합7872 서울행정법원)은 한방의료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한 반면, 항소심(2016년 8월 19일, 선고2013누50878 서울고등법원)은 한방의료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의료기기 등의 개발ㆍ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하지 아니했다는 사정만으로 한의사가 해당 의료기기 등을 진료에 사용한 것이 그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한 것이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대법원 2014년 1월 16일 선고, 2011도 16649판결)한 바 있다.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헌법재판소는 한의사의 안압측정기 등을 사용해 의료행위를 한 사건에서 “의료법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바, 과학기술의 발달로 국민건강에 위해가 없고 한의사가 충분히 교육을 받았다면 자격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기기의 사용권한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해석돼야 한다”(2013년 12월 26일, 2012헌마551 결정)면서, 면허된 것 이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해당 의료행위의 기초가 되는 학문적 원리 ▲해당 의료행위에 관한 규정 ▲교육 및 숙련의 정도 ▲보건위생상의 위해 유무 등을 제시했다.

복지부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인 X선 골밀도측정기 사용이 한방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유권해석해 한의사의 방사선 진단 관련 의료행위가 허용되지 않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한편, 동북아시아 4개 국 중 우리나라와 대만은 의학과 한의학의 교육과 면허제도를 구분하고 영역간의 배타성을 인정하는 의료이원체계인 반면, 중국은 형식상 중의와 서의를 구분하고 있으나 내용은 통합돼 있다.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골밀도기를 시연 중인 김필건 전 대한한의사협회장

중국은 중의학, 의학, 중서의결합의학 등 3가지 교육과정이 있는데, 이 중 중서의결합의학 대학 졸업시 의사와 중의사 면허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중의사와 의사 모두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

대만은 중국과 동일하게 중의학, 의학, 중서의결합의학 등 3가지 교육과정이 있는데, 이 중 중서의결합의학 대학 졸업시 의사와 중의사 면허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지나, 의사 면허를 가진 경우에만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가능하다.

미국은 정골의학 교육을 받은 ‘정골요법의사’가 인체골격과 해부학을 기반으로 통증치료, 질병예방 등 1차 진료를 담당하고 있으며,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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