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보건의료계의 뜨거운 화두였던 영리병원과 원격의료 허용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지난 17일 기획재정부에 9개의 핵심 규제개혁 과제를 건의했다. 여기에는 ▲영리병원 설립 허용 ▲원격의료 규제 개선 ▲의사ㆍ간호사 인력 공급 확대 등도 포함돼 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013년 12월 15일 여의도에서 개최한 전국의사궐기대회 모습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013년 12월 15일 여의도에서 개최한 전국의사궐기대회 모습

기재부는 지난달 28일 ‘제1차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를 열고 혁신성장을 위한 향후 추진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 같은 정부 움직임에 경총이 산업현장에서 취합한 과제를 전달한 것이다.

경총은 먼저 영리병원과 관련, “현행 의료법을 살펴보면 원칙적으로는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개설은 불가능하며 제주도 및 경제자유구역 등에 국한해 외국의료기관 개설이 가능하다.”라며, “하지만 영리법인 병원 설립 금지 등 진입규제로 인해 의료서비스 산업의 성장 및 일자리 창출 가능성이 저해되고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이 주장하고 있는 공공의료 질적저하 등은 현실성이 낮은 주장이다.”라고 지적했다.

경총은 “오히려 네덜란드는 1990년대 이후 소비자 선호의 다양화, 기존 의료서비스에 대한 불만 증가로 법을 우회한 영리의료기관이 활발히 신설ㆍ운영중인 바 현실과 규제 간 괴리 해소를 위해 제도개편 논의가 활발한 상황이다.”라며, “민간자본 유입을 통해 병원 신축 등 막대한 초기비용을 조달하는 한편, 고부가가치 및 18만 7,000개에서 37만 4,000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경총은 영리의료법인이 허용되면 의약산업 뿐만 아니라 바이오ㆍ헬스ㆍ식품ㆍ화장품 등과 상호 연계가 가능해져 시너지 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했다.

원격의료에 대해서도 “원격의료를 시행하게 될 경우 고령자 등 의료접근성이 낮은 계층과 만성질환자 등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환자의 후생이 증가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경총은 “현행 의료법에 규정된 원격의료 개념에 따르면 의료기관을 벗어나 원거리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신체ㆍ장소적 제약으로 인해 의료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한편 새로운 의료기기 도입 및 확산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면서, “의료취약지 및 만성질환자를 중심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의 경우 1997년부터 원격상담을 시작으로 원격의료에 대해 보험적용(메디케어)를 실시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있다며 해외 사례도 제시했다.

경총은 “의료인간 원격의료만을 허용하는 의료법 제34조를 개정, 만성질환 관리, 취약지 거주자 등을 위해 의료인-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다만 원격의료 허용시 발생 가능한 서비스 허용범위나 과잉진료 가능성, 의료사고 법적분쟁 등에 대해서는 전문가 중심의 논의를 통해 보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경총은 의사ㆍ간호사 인력 공급 확대도 주장했다.

경총은 현재 의료인력 공급이 부족해 지방병원의 의사 충원이 어렵고 병원 경영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지방 근무 기피에 따라 지역별 의사 인건비 격차 심화, 지방 병원의 의사 인건비 부담 가중 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간호ㆍ간병통합서비스 등으로 간호인력 수요가 늘어나고 있으나 간호인력 공급 부족으로 지방 중소병원의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어 의대와 간호대 입학 정원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총은 “의사인력 부족, 지방병원 인력난을 고려해 동결된 의대 정원 확대, 의대 신설 등을 통해 의사 공급을 확충하고 지방 대학의 간호대 정원 증원 또는 간호대 신설을 통해 인력 공급을 확대해 의료접근성을 증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역설했다.

이외에도 ‘드럭스토어 산업 활성화’ 과제에 법인약국 허용과 상비약 판매점포의 ‘24시간 연중무휴 요건 삭제’ 등도 포함돼 약계의 반발도 예상된다.

경총은 “규제 개혁이 잃어버린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다.”라며, 이번 제출안이 이에 일조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규제개혁 효과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해당사자 간 갈등으로 추진이 지연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설득해 나서는 등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보건의료노조는 경총의 주장에 대해 의료제도를 망가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경총의 주장은 보건의료분야 양질의 일자리 창출 방식으로 적합하지 않으며 촛불민심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요구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누가 보더라도 (경총의 주장은) 보건의료분야에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면서 “그러나 의료영리화 정책 추진을 통한 일자리 확대는 틀린 방식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일자리는 병원비 폭등과 의료불평등 심화, 의료접근성 약화 등 환자와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뿐이다.”라고 우려했다.

경총이 제시한 영리병원 설립 허용과 원격의료 허용은 촛불민심의 요구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개혁과제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영리병원 설립 허용과 원격의료 허용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대표적인 의료영리화정책이었고, 의료적폐 청산 대상 1호였다.”라며, “무한대의 돈벌이를 추구하는 영리병원 설립 허용은 병원비 폭등과 의료공공성 파괴, 의료전달체계 붕괴, 건강보험제도 파탄 등을 초래할 의료대재앙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나라에는 영리병원 설립 허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10%에도 못 미치는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민간병원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또, “원격의료 허용은 의사와 환자간 대면진료를 확대하는 대신, 정확성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원격의료기계를 통한 진료를 확대함으로써 의료수익 투자처를 개발하려는 재벌자본에게는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겠지만 의료사고 위험 증가, 환자쏠림현상 심화, 지역적 의료불균형 확대 등 우리나라 의료제도에 심각한 피해를 미치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원격의료 허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의료취약지와 의료사각지대 지역주민에 대한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지역적 의료불균형과 건강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보건의료분야 일자리 창출은 의료영리화를 확대하고 의료공공성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라며, “보건의료분야 일자리 창출은 ▲보호자 필요없는 병원을 만들기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환자안전 전담인력 확충▲의료취약지와 의료사각지대 공공의료 확충 ▲국가치매책임제를 실현하기 위한 치매전문센터 설립과 치매환자를 위한 돌봄인력 확충 ▲학교보건, 산업보건, 119 응급구조대 등 공공보건인력 확충 ▲정신보건전문요원 확충 ▲만성질환 전담 사례관리 간호사 확충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담보하고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면서 일자리를 확충하는 선순환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경총이 건의한 영리병원 설립 허용과 원격의료 허용은 규제 개혁이 아니라 의료영리화와 재벌자본의 의료영리 추구 길을 터주는 규제 개악이다.”라며, “경제활력을 회복하고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영리병원 설립과 원격의료를 허용하라는 경총의 건의는 촛불혁명 이전으로 되돌아가 박근혜정권이 추진했던 의료영리화정책을 다시 추진하라는 부당한 요구이다.”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경총이 기획재정부에 건의한 영리병원 설립 허용과 원격의료 허용 요구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영리병원과 원격의료 허용 논란은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당시 절정을 맞은 바 있다.

노환규 전 회장은 원격의료와 의료영리화를 추진하는 정부에 맞서기 위해 2013년 11월 비대위를 구성하고, 의료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내걸며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당시 비대위가 꺼내든 투쟁 슬로건은 원격의료 및 영리병원 저지였다. 비대위는 12월 15일 여의도서 전국의사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전국에서 모인 2만여 명의 의사들은 의권쟁취와 관치의료 타파를 외쳤다.

노환규 위원장은 정부의 잘못된 의료제도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목을 그어 피를 흘리는 장면을 연출했고, 추무진 정책이사, 방상혁 기획이사, 임병석 법제이사 등 의협 상임이사 3인은 머리카락을 삭발하며 대정부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특히, 이날 궐기대회에는 이례적으로 유지현 보건의료산업노조위원장이 참여해 적정수가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이듬해인 2014년 3월 10일에는 집단휴진을 강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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