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의사들이 서울 도심 한자리에 모여 대한민국 의료 바로세우기를 외쳤다.

이들은 횡격막 탈장이라는 희귀증례를 발견하지 못해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를 법정구속한 법원에 항의하는 한편, 안전한 의료 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는 11일 오후 2시 서울 덕수궁 앞 대한문에서 ‘대한민국 의료 바로세우기 제3차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전국에서 현장을 찾은 6,000여명(본지 추산, 경찰 추산 5,000명, 의협 추산 1만 2,000명)의 의사들은 의사 구속 판결과 대한민국 의료를 붕괴시키는 잘못된 의료정책을 성토했다.

최 회장은 “의사들이 최선의 진료를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감옥에 갈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 의료제도를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라며, “굴욕적인 삶을 버리고 당당히 우리 손으로 의권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동참을 호소했다.

최 회장은 “궐기대회는 우리가 원하는 법제정을 위한 교두보 확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라면서, “우리 주장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절대 굴하지 말고 전진해 나가자.”라고 호소했다.

그는 “적당한 진료를 강요하는 의료구조를 개혁해 낼 수 있도록 의료분쟁특례법 제정 반드시 이루어 내겠다.”라고 약속했다.

의료계 대표자들도 격려사와 연대사를 통해 안전한 진료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혹한 처벌보다 의료시스템 개혁과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철호 의협 대의원의장은 “앞으로 진료중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교도소 담장을 넘어 바로 잡혀 들어갈 선후배 동료 의사들의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모였다.”라고 궐기대회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 의장은 “희귀 증례는 어느 의사도 쉽게 진단하고 치료하기 힘들다. 좋지 않은 결과만 나온다고 의사를 구속하면 진료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라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덕철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은 “최근 우리의 동료이자 선배와 후배 그리고 제자이기도 한 의사 3명이 한꺼번에 법정 구속됐다. 가정의학 전공의는 1년차로서 근무를 시작한지 3개월 밖에 안되는 상태로 응급실 당직을 서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응급실은 예기치 않은 상황과 흔치 않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 과정이 발생하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료현실은 우리가 전문가로서 최고의 선택만을 취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라면서, “안타까운 사건이 재발되지 않고 의료인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의료 시스템의 개혁과 함께 의료분쟁특례법을 하루 속히 법제화하고 시행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섭외이사는 “100명도 넘는 환자를 진료한 상황에서 새벽에 1시간 남짓 진료하며 외래 추적을 지시한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매우 드문 질환에 대한 진단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12일이나 지나서 발생한 결과가 부정적이었다고 오진의 멍에를 씌우고 형사적 책임을 묻는다면, 어느 의사가 자유로울 수 있겠나.”라고 묻고, “상급심을 통해 의료의 특성을 이해하는 올바른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박홍준 서울시의사회장은 “의사들은 의료정책 결정과정에서 완전히 제외됐고 응급진료현장에서 무시당하며 마땅히 보호받아야할 법체계로부터 외면 당했다.”라며, “과연 어느 누가 주어진 의료현장에서 정상적으로 진료에 임한 의료인에게 고의가 아닌 과실 때문에 구속이라는 돌을 던질 수 있겠나.”라고 우려했다.

박 회장은 “개원의, 봉직의, 전공의 모두 하나가 돼 자율적인 진료환경을 확보해야 한다.”라며, “이를 위한 제도적인 개선을 이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진료 의사에게 가혹한 책임을 묻는 것만이 국민의 안정적 진료환경을 조성하는 길 인양 호도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게 책임 있는 행동인가?”라고 묻고, “안정적 진료환경은 저수가 개선을 위한 적절한 투자와 올바른 진료환경 조성이 해결책이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의료사고에 대한 사회적 대책은 의사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 아니라 원인분석과 재발방지를 위한 저수가, 노동착취 구조의 의료 환경 개선에 초점이 맞춰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진단을 못했다는 이유로 구속이 된다면 어떤 의사가 진료를 제대로 하겠나. 의료를 왜곡시키고 환자와의 갈등을 유발할 것이다.”라며, “교도소에 가지 않기 위해 무조건 방어 진료를 하고, 진단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소신없이 과도한 검사에만 매달릴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환자를 위해 필요한 필수 인력인 수술할 의사, 분만할 의사가 사라지고 있고, 응급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할 의사들이 사라지고 있다. 당장 여러분의 가족이 위험해진다.”라며, “국민이 바로 잡아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라고 호소했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지금도 계속해서 밀려오는 중환자와 응급환자 최전선에는 전공의들이 밤을 지새우며 버티고 있다.”라며, “환자 안전보다는 외래환자 수, 입원환자 수, 수술 건수만 내세우는 부끄러운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 전공의는 항상 희생양이었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전공의가 안전하게 수련 받을 수 있고 환자 안전이 지켜질 수 있는 안전한 의료 환경을 원한다.”라며, “국민이 우리를 간절한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대한문 집회중 의사 대표자들은 청와대 인근인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 후 신문고를 울리고 대통령께 드리는 글을 낭독했다.

의사들은 “의료현실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열악한 상황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대한민국 의사들의 진료량은 OECD국가 평균의 3배에 달하지만, 의료사고 건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준이다. 이러한 통계는 의사들의 희생으로 건강보험제도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의사들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건강보험제도와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라는 허울의 이면에는 썩어 곪아가는 한국의료의 민낯이 웅크리고 있다.”라며, “환자를 위해 의사의 양심으로 최선의 진료를 했을 때 돌아오는 것은 ‘부당한 의료행위’라는 매도와 비난뿐이었다.”라고 우려했다.

의사들은 “국민건강에 대한 재정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불합리한 의료규제와 의료제도로 점철된 대한민국 의료구조를 근본부터 뜯어고쳐야만 국민 건강을 위한 최선의 진료가 가능해진다.”라고 분명히 했다.

의사들은 “지난 9ㆍ28 의정합의에 따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은 의ㆍ정간 충분한 논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해나가는 것으로 정책 변경이 이루어졌다.”라며, “함께 약속했던 다른 사항들 또한 국민건강을 위해 조속히 이행돼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 달라.”고 건의했다.

의사들은 “의료는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에 직결되는 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해 대통령의 국정 철학인 ‘사람이 먼저’인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의료환경을 개선해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라며, “무너져가는 대한민국 의료를 하루속히 바로세워 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서 의사협회는 러시안룰렛 퍼포먼스, 의료위기 시계 돌리기 퍼포먼스를 통해 의료현장의 현주소를 전달했다.

러시안 룰렛은 회전식 연발 권총의 여러 개의 약실 중 하나에만 총알을 넣고 총알의 위치를 알 수 없도록 탄창을 돌린 후, 참가자들이 각자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이다.

대한민국 의료현실에서 매일 러시안룰렛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의사협회의 설명이다.

또 최대집 회장은 의료계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의사들이 해당 시계를 돌려 위기 상황에 처한 의료계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최대집 회장은 11일 총궐기대회 본행사에 앞서 열린 의료계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전국 대표자들로부터 총파업의 구체적인 일정과 방법 등 전권을 위임받았다.

연석회의에는 의협 상임이사회와 대의원회, 대한의학회, 대한개원의협의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이 참여했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