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국가책임제의 범위를 확대해 치매환자와 국민의 재산권 보호차원에서 손해배상책임보험 등 제3자 피해구조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보험연구원 이상우 수석연구원은 최근 ‘고령화리뷰’에 게재한 ‘일본 지자체의 치매환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보험 제공과 시사점’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최근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이 치매 고령자 증가와 최고재판소 판결의 영향으로 치매 고령자가 일으킨 물적손해 사고로부터 지역주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손해배상책임보험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치매 고령자 수가 2012년 462만명(65세 이상 7명 중에 1명)에서 2025년 730만명(65세 이상 5명 중에 1명)으로 증가해 사회적 비용이 14조 5,000억엔에 이를 전망이다. 치매 실종자 수도 최근 증가해 2016년 약 1만 5,000명이 실종됐다.

일본 가나가와현 야마토시가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손해배상책임보험을 제공한 이후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자체들이 관심을 갖게 된 직접적 배경은 치매 고령자에 의한 타인의 물적 손해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치매 고령자 가족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배제하는 최고재판소 판결에 영향을 받았다.

사건 주요내용은 91세 치매 환자 남성 A씨가 전철 선로에서 배회 중 전철에 치여 사망하면서 발생한 피해복구비와 출근시간 대체교통 비용을 전철회사가 감독책임이 있는 가족에게 청구하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일본의 1심과 2심 재판부는 ‘민법’ 상 치매 등에 의해 책임 무능력자(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그 행위의 책임을 변식할 지능이 없는 자)의 감독책임 의무가 있는 가족에게 손해배상 청구 전액을 배상할 것을 판시했다.

1심 나고야 지방재판소는 A씨 부인에게 졸음에 의한 주의의무를 게을리 한 과실, 장남에게 별거 중이라도 사실상 감독자로서 아버지의 배회 방지대책을 게을리 한 과실을 인정해 청구금액 720만엔의 전액 배상판결을 내렸다.

2심 나고야 고등재판소는 장남의 감독책임 의무는 인정하지 않고, A씨 부인에게 감독책임과 전철회사의 감시의무 소홀을 인정해 A씨 부인에 대해 360만엔의 지급을 판결했다.

일본 언론은 2심 결과에 대해 ‘간병현장의 충격적 판결’, ‘치매 환자가족 파산’, ‘2심이 치매 고령자를 24시간 감시하고 길거리를 배회하지 못하도록 결박 또는 방에 강금할 것을 요구하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2016년 최고재판소는 A씨 부인과 장남에게 치매 고령자의 감독의무 행사가 불가능한 상태로 판단하고, 가족에게 손해배상 의무가 없는 것으로 판결했다.

최고재판소는 이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 법령상 근거가 불분명해 치매 고령자 등의 정신장해자와 동거하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책임무능력자를 감독하는 법정 의무자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최고재판소는 A씨의 감독의무자를 치매 환자 심신상태와 간병상태, 가족과 동거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이 요구된다고 그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최고재판소는 A씨 부인의 경우 85세로 거동이 불편한 간병상태이고, 장남의 경우 20년 이상 부모와 동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감독의무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일본 최고재판소 심판 치매 고령자 전차 피해사건 주요 내용
일본 최고재판소 심판 치매 고령자 전차 피해사건 주요 내용

해당 판결에 따라 일본에서 치매 고령자가 타인에게 물적손해 사고를 입힐 경우 어느 누구에게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일본 사회에 확산됐다.

이러한 불안감이 확산되자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은 치매 고령자로부터 지역주민의 재산권 피해를 보호하기 위해 민간 보험회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대표적으로 가나가와현 야마토시는 손해보험회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해 치매 고령자가 지역주민에게 입힌 물적피해 사고를 구제하는 고령자개인배상책임보험사업을 2017년 11월에 처음으로 실시했다.

야마토시가 계약한 보험상품은 개인배상책임보험부 상해보험특약이다. 가입 대상은 야마토시가 실시하는 치매 고령자 보호 복지제도에 가입한 거주자를 대상으로 하며, 보험료는 피보험자 1인당 연간 약 6,000엔을 야마토시 예산으로 부담한다.

보장내용은 치매 고령자가 제3자에게 재산적 피해를 입혀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거나 치매 고령자에게 상해사고가 발생할 경우 손해보험회사가 최대 3억엔 한도의 손해배상금과 상해사망ㆍ후유장해보험금(300만엔), 입원보험금을 지급한다.

이외에 현재 아이치현 오부시(2018년 6월), 이바라기현 코야마시(2018년 6월), 가나가와현 에비나시(2018년 7월), 후쿠오카현 쿠루메시(2018년 10월)로 확산되고, 효고현 코베시가 2019년에 시행할 예정이다.

일본 지자체들은 지역 내 치매 고령자 보호 복지제도 가입자에게 손해배상책임보험을 제공함으로써 그동안 치매보호복지제도 가입에 부정적이던 치매 고령자와 그 가족의 인식을 개선시켜 향후 실시하는 동 복지제도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치매 고령자 보호 복지제도란 치매 검사, GPS 기기 부착, 지문등록, 실종 또는 길거리 배회 시 조기발견 케어, 치매 고령자 운전면허 자율 반납 등이다.

이상우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도 최근 치매 고령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치매 고령자가 타인에게 물적 손해를 입히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므로 일본과 같은 유사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내다봤다.

특히 우리나라의 ‘민법’도 일본과 유사하게 책임 무능력자의 감독책임을 가족에게 부여하고 있으므로 감독책임 의무에 대한 가족을 배제한 일본 판결사례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이 경우 제3자가 치매 고령자로부터 입은 물적 손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어 치매 고령자에 대한 손해배상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연구원은 “일본의 판결사례는 재택요양 시 가족이 치매 고령자를 24시간 감시할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를 감안할 경우 치매 고령자 보호가 가족만의 부양으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라며, “우리나라도 최근 자녀와 동거하지 않고 고령자 부부만이 동거하는 고령자 가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어 배우자가 치매에 걸릴 경우 노령의 배우자의 힘만으로 치매 고령자를 감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최근 5년간 치매 고령자 수가 30% 이상 증가해 2017년 약 70만명에 이르고, 연간 1만명 이상의 고령자가 실종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일본의 사례는 치매 고령자 가족의 정신적ㆍ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지역주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각 지대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이 연구원은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우리나라도 기본적 간병은 가족 중심으로 부양하되, 보호 사각지대가 발생할 경우 개인의 문제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정부 또는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손해배상책임보험 등 제3자 피해구제제도 도입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이어 “이러한 인센티브 제공이 향후 운전면허 자진 반납과 치매환자 실종방지 등 정부의 치매환자 케어서비스 활성화 등의 부수적인 효과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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