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한의약 육성이 시급하다는 데 한의계가 입을 모았다. 특히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의 정책을 펴야 한다며, 이번에 이뤄지는 추나요법 급여화 뿐 아니라 첩약 급여화와 커뮤니티케어의 한의사 역할론 등을 주장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명수 위원장(자유한국당)은 지난 14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제8차 한의약 보건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고성규 경희대학교 동서의학연구소장은 “1951년 국민의료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의료이원화 체계는 국민의 건강권 및 선택권 권리를 보장한다.”라며, “반면, 의료공급체계 효율성, 소비자 혼란, 직역간 갈등을 초래하는 단점이 있다. 또, 한의학과 현대의학의 배타적 구분으로 건강관심, 기술 발달에 따른 고도화, 복잡화, 융합화된 의료서비스의 등장에 걸림돌이 된다.”라고 밝혔다.

고 소장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 구조를 보면, 정부조직은 소규모 국으로 업무가 과다하며, 법규 역시 많은 관계법령에서 의사 중심 입법으로 한의계의 소외가 크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나라 한의사와 의사 비율은 1:5이지만, 한의의료기관과 의료기관 비율은 1:2.4로 차이가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고 소장은 “한의사를 제외할 경우 우리나라 의사 비중은 1.8명으로 OECD 평균의 1/2 수준이다.”라며, “의사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 한의사는 1차 보건의료, 필수의료에 지대한 기여가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건강보험 현황에 따르면 한의의료의 청구 비중은 2017년 기준 5.5%에 그치며, 특히 의약품 청구액 현황을 보면 한약제제 청구비준은 0.2%에 불과하다면서, 한의과는 보장률과 제약산업 등, 후방산업에 절대적으로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검사료와 입원료를 합쳐서 2%도 안 되는 왜곡된 구조라는 것이다.

고 소장은 “연구개발 R&D 예산 역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교육부 등을 모두 포함해도 2% 이내에 불과하고, 한의(융합) 분야 신규사업과 미래지향적 범부처과제가 전무하다.”라며, 연구개발비가 2019년 155억원으로, 전년 대비 84억원 감소한 사실을 지적했다.

이세정 한국법제연구원 위원은 “세계적으로 전통의약과 보완대체의학에 대한 접근성이 확대되는 추세다.”라며, “미국, 유럽연합, 중국은 글로벌 전통의약ㆍ보완대체의학 시장의 주요 부분을 점유하는 국가ㆍ지역으로서, 전통의약ㆍ보완대체의학의 접근성 확대를 위한 규제체계 마련, 전문인력의 육성, 연구개발의 지원 등을 추진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미국의 경우 전통의약ㆍ보완대체의학 관련 연방 차원의 단일 입법을 마련하지는 않았으나, 침술, 약초의약품 등의 공적 의료보험으로의 편입 등을 통해 전통의약ㆍ보완대체의학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전통의약ㆍ보완대체의학의 법적 정의, 자격제도 구축, 인허가 시스템 마련 등에 있어 각 회원국과의 규제체계를 조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고, 중국의 경우 중의약에 고유한 독자의 법률을 제정해 그 계승 및 현대적ㆍ과학적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더 나아가 중의와 서의의 결합을 통한 상생발전을 도모하고 있다고 이 위원은 전했다.

이 위원은 “우리나라는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래 한의사와 의사가 병존하는 이원적 보건의료체계를 유지해 오고 있고, 이는 의료기술의 발달에 따른 보다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의 제공을 요구하는 의료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함에 있어 유의미하다.”라며, 한의약 육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일본의 경우, 근대적 보건의료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전통의학을 국가자격과 의학이론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배제하고 서양의학으로 일원화한 것에 대해 최근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한의약은 종래의 치료적 관점의 의학에서 예방의학으로 중점이 옮겨가고 있는 21세기의 의학적 패러다임의 변화와도 잘 상응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의약 육성을 위한 법제도적 과제로 “한의약의 경우 안전성과 효능을 수립하기 위한 과학적 증거가 제한적일 뿐 아니라, 한방치료에서의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 유전자 검사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의약의 과학적 발전에 있어 여러 장애와 한계에 놓여있다.”라며, “의료소비자의 다양한 수요 충족을 위해서는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양 시스템이 상호보완함으로써 이익이 조화되고 융합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의약의 고유한 특성에 기반한 시판허가 등 규제체계, 전문인력 양성체계 등을 독자적으로 구축하고, 과학적 데이터 확충을 위한 시스템 구축, 새로운 한의약 개발, 표준화 등을 위한 연구 지원 및 평가 시스템 등을 보다 정교하게 법제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토론자도 대부분 한의계 인사로, 국민건강을 내세우며 한의약 육성의 중요성에 입을 모았다.

한창호 대한한의학회 정책이사는 “한의사는 보건의료 전문인력의 양대 축 중 하나다.”라며, “물론 전체 소비 측면 등에서 다소간의 불균형은 있지만, 법적으론 명백히 한의사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이사는 이어 “국제적으로는 한국의 한의약, 한의사가 요구받는 사항이 국내보다 많다.”면서, “세계 전통의학의 최선두에서 역할을 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강조했다.

한 이사는 한의약의 네 가지 발전방향으로 ▲질병중심이 아닌 건강중심 ▲공급자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 ▲일차의료 중심 ▲통합의학 중심을 제시했다.

질병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한의약의 장점인 만성질환 관리 등을 활용해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이사는 “보장성 강화, 급여 확대 등의 이야기를 할 때 한의약의 외연 확장을 생각하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안된다.”라며, “주요 타겟은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낮춰주는 것, 국민이 받는 급여가 확대되는 것, 국민이 원하는 급여행위가 많아지는 것이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일차의료 중심이 돼야 한다. 의사와 한의사는 그 숫자가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 같지만, 의원급 기관수로 보면 1:2.4로 차이가 크지 않다.”라며, “국민이 일차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공간이 한의원이니, 보편적 의사로서의 한의사 역량이 훨씬 강화돼야 한다. 감염병, 백신 등 지식 면에서도 본인이 시술 안하더라도 국민에게 안내할 수 있도록 교육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통합의학 중심과 관련해서는 “단순한 의학적 통합이 아닌, 한의 이외의 모든 과학적 지식, 가용 재원, 기술, 지식 등을 활용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부분에 있어서 한의학회와 40개의 분과 학회가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이은경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일차보건의료에서 한의약과 한의사의 적극적인 활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해외에서는 우리나라가 전통의학의 종주국이라고 하지만, 객관적 데이터 등을 보면 한의약의 건보 차지비율이 점점 낮아져서 3.5%에 불과하다.”라며,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요인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문제는 많은데 중국, 일본, 대만만 봐도 제도 안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제도가 있는 중국과 대만, 제도가 없는 일본 모두 의료인과 전통의료인이 자유롭게 전통의약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역사적으로 보면, 국가가 형성되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보험과 면허 등 각종 제도가 정착되는데, 진입장벽이 낮을 때는 일상적으로 썼던 기술, 약제, 행위가 급여로 들어오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보험이 확대되는 과정인 7~80년대는 지금처럼 근거 등을 내세우기보다는 쓰던 부분은 인정하고, 이후 발전하면 피어리뷰, 경제성평가 등을 해서 내보낼건 내보내는 구조로 제도가 발전하는데, 한국 한의약은 그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한의계도 그 동안 제도에 대한 필요성 많이 못 느꼈는데, 한약과 한의사 행위가 제도에 많이 포함 못되며 현재 많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라며, “과학적ㆍ경제적 기준이 높아지고, 상대가 많이 생겼다. 또, 의료계는 제도에 익숙해진 반면 한의계는 내부적으로 제도개선의 폭이 좁아지는 조건에서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자동차보험, 근골격계 등의 사례를 보면, 제도에 포함된 부분은 크게 발전했다는 주장이다.

이 부회장은 “자동차보험의 경우 2010년 400억원 규모였는데 매년 1,000억원씩 늘어 지난해는 7,500억원에 달한다. 경제적, 제도적 제약 없이 공정하게 경쟁하면 한의약이 우수한 제도라는 것이다.”라며, “보장성과 제도에 포함되는 것에 대한 필요성, 당위성 높아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일차보건의료, 커뮤니티케어 등에서 한의약의 중요성과 역할론을 역설했다.

현재의 자원과 인력으로는 고령화 사회에서 필요한 의료수요와 커뮤니티케어 사업 등을 충당하기 역부족이므로 한의약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한약약제의 경우 제품화해도 권리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며,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신은주 한국의료법학회장은 “약초를 기초로 의약품을 개발하는 생약제제의 우수성이 각광받고 있다. 서양은 한 단계 더 응용해 특허 내고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는데, 우리나라 법은 전통의학 의약품의 경우 누가 발명했는지 어려운 부분이 있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의약품을 제품화했을 때 권리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신 회장은 “전통의학 의약품은 개발해도 이익이 없는 상황이 많아서 연구의욕이 떨어진다.”라며, “해외사례를 참고해서 우리나라가 전통적인 약제를 제제로 새 의약품을 만들었을 때 권리 보존을 어떻게 해줄지 입법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그는 또, 의료법이 당초 취지인 국민건강 부흥과는 간극이 생겨 의사의 이익을 위해 더 치중한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융복합 추세를 반영해 의료도 의학과 한의약이 서로 유기적으로 시너지를 이룰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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