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건강보험 30주년을 맞은 가운데, 여전히 낮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치료 중심 보장 영역을 예방과 재활 및 호스피스 영역까지 확대하고 상병수당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불필요한 서비스 제공을 발생시키는 공급자에 대한 지불제도도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권순만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건복지포럼 6월호에 기고한 ‘건강보험 보장성의 정책과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OECD 회원국들의 본인부담금, 재난적 의료비, 빈곤화
OECD 회원국들의 본인부담금, 재난적 의료비, 빈곤화

권 교수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취약하다. 이번 정부 들어 특히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대해 큰 정책적 의지를 나타냈지만, 과거 정부에서도 보장성 강화는 항상 중요한 화두였다.”라며, “국민 의료비 중 환자 본인부담금의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국가(OECD) 회원국 중에서 매우 높은 수준에 속한다.”라고 밝혔다.

특히 권 교수는 보장성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재난적 의료비, 빈곤화와 함께 경제적인 이유로 의료를 이용하지 못한 경우, 즉 미충족 의료 욕구(unmet need)도 측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주요 과제로 먼저, 비급여 관리와 보장 영역의 확대를 꼽았다.

권 교수는 “정부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예비급여 등을 통한 비급여서비스의 급여화, 예비급여와 비급여의 지속적인 관리와 평가, 비급여 이용에서의 환자 선택권 강화 등과 함께 급여와 비급여를 동시에 제공하는 혼합진료에 관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 현재의 법정본인부담률 수준이 적당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사후적으로 보상을 해 주는 본인부담상한제가 있기는 하지만, 법정본인부담금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 취약계층의 경우 의료이용 시점에서 접근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이어 “비급여 진료비를 포함한 총본인부담금의 경제적 부담을 낮춰 주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 사업 등의 경우, 비급여의 축소와 함께 어떻게 역할을 정립하고 다른 제도와 연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질병으로 인해 노동력을 상실하고 빈곤해지는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유급 병가, 생활비 지원, 상병수당 등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전했다.

나아가 현재 치료 중심인 건강보험 급여 구조가 예방, 건강 증진, 재활,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등을 포괄하도록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건강보험 급여만의 문제가 아니고 실제 의료의 제공과 이용이 얼마나 효율적인가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며,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도 주장했다.

그는 “과거 정부가 건강보험의 급여를 지속해서 확대해 왔음에도 지금까지 보장성이 매우 낮았던 것은 새로운 의료서비스와 기술이 시장에 진입해 비급여 항목이 더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라며, “이러한 현상은 건강보험 수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새로운 비급여 의료서비스와 기술을 선호하는 공급자의 유인, 소비자의 선호, 고가의 서비스를 더 많이 제공할수록 공급자의 수익이 증가하는 행위별 수가제의 왜곡된 유인 구조 등과 깊이 관련돼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소비자가 경험하는 가치나 의료의 질과 무관하게 의료비가 지불되는 행위별 수가제는 가치에 기반한(value-based) 지불제도와 보건의료체계의 개편과도 가장 거리가 먼 비효율적인 지불제도다.”라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정부는 포괄수가제와 행위별 수가제 및 일당 정액제를 혼합한 형태인 신포괄수가제도를 확대하고 참여하는 병원에 대해 매우 높은 정책 가산을 제시하고 있지만, 일본의 제도를 상당 부분 도입한 신포괄수가제는 기준 재원일수를 초과하는 재원일수에 대해서도 일당수가를 지불하고 고가 서비스와 의사 행위에 대해서는 행위별 수가제를 통해 별도로 보상하므로, 진정한 포괄수가제도로 보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즉, 신포괄수가 제도는 불필요한 재원 일수나 서비스 감소에 별 효과가 없으므로 보장성 강화에 도움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권 교수는 보장성을 포괄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의사 결정을 위한 정책 결정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우선순위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의사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는 절차 수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반 대중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 명확하고 합의할 수 있는 원칙과 가치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합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조직화하지 않은 일반 대중의 욕구와 가치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안정적인 논의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며, 시민위원회와 같은 기구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우선순위 원칙과 가치 그리고 확대 경로에 대해 권고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권 교수는 “보장성 강화 정책은 더 이상 전체 의료비용 중 본인부담비용의 비율이라는 평균 지표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소득이 낮은 취약계층이나 중증 질환이 있는 사람에 대한 본인부담률이 국가의 평균적인 본인부담률보다 훨씬 중요하다.”라며, “앞으로 보장성 지표는 재난적 의료비, 빈곤화, 미충족 의료 욕구 등을 사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러한 측정치 계산 시에는 패널 자료나 가구 조사를 통해 안정적인 지표를 충분히 구할 수 있다. 지금의 국민 의료비 대비 평균 본인부담률 역시 일정 부분은 가구 조사나 표본 조사의 결과에 의존한다.”면서, “본인부담률을 사용한다면 소득계층별로 혹은 경제적 부담이 큰 질환별로 세분화해 정책 목표로 사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정부는 보장성 강화에 대한 더욱 강력한 정책적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여 기대가 크지만, 인구 고령화 등을 고려하면 갈 길이 매우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또, 건강보험 보장성은 단순히 보험 급여만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적인 의료 제공 및 공급자에 대한 경제적 유인과도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진료비 지불제도와 의료 공급 체계 개혁과 같은 근본적인 변화가 수반되지 않고는 보장성 강화 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라고 역설했다.

또, “보장성 지표로 평균 본인부담률 대신 재난적 의료비용이나 빈곤화를 사용하고, 보장성 확대 정책 과정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높이기 위해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가치를 더욱 체계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국민의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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