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의 질병코드화 의결 이후 팽팽한 의견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보건의료계가 게임이용 장애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또, 정부는 게임이용자를 적극 보호하기 위해 현행 제도들을 점검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으며, 정부와 게임업계가 함께 규제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발간한 이슈와 논점에서 배관표ㆍ김은진 입법조사관은 ‘WHO의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화 현황 및 과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앞서 지난 5월 20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국제보건기구(이하 WHO) 제72회 총회에서 25일 B 위원회는 ‘게임이용 장애(gaming disorder)’ 질병코드 ‘6C51’을 새롭게 추가한 ‘국제질병분류 11번째 개정판(이하 ICD-11)’ 발행을 의결했다. 이는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의 하나로 인정하겠다는 의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게임이용 장애가 전문가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라며, 2013년 미국정신의학협회가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인터넷 게임이용 장애’를 ‘추가 연구가 필요한 항목’으로 선정한 것이 사실상 시작이라고 전했다. 이전까지는 게임이용 장애가 아니라 ‘인터넷 이용 장애’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WHO는 2014년부터 매년 ‘인터넷, 컴퓨터, 스마트폰 그리고 유사 전자기기의 과다 사용’ 관련 회의를 열었다.

2014년 회의에서만 해도 게임이용 장애는 여러 중독적 행위 중 하나로만 검토됐다. 그러나 매해 회의를 거듭할수록 논의가 게임이용 장애에 집중됐고,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화 제안까지 나오자 전문가들 간 찬반 논쟁이 크게 일었다.

반대 입장에서는 질병코드화 참고 연구들의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점, 행위중독의 정의가 물질중독의 정의에 기울어 있으며, 그에 대한 장애의 증상과 평가에 대한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찬성 입장에서는 게임이용 장애와 같은 행위중독은 점점 게임에만 몰두하는 것(내성)과 안 하면 괴로운 것(금단현상)을 이미 포함하고 있고, 적절하게 즐기는 행동이 아닌 개인의 삶에 심각한 심리적 고통과 장애를 유발하는 과도하고 문제가 되는 행동을 병리화할 필요가 있으며, 질병으로 인정함으로써 예방 및 치료에 적극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이처럼 찬반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WHO는 2018년 6월 18일 ICD-11을 사전 공개했다.

ICD-11은 게임이용 장애를 ▲게임이용 시간이나 강도 등에 대한 통제력이 손상되고 ▲다른 관심사나 일상 행위보다 게임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게임을 계속하거나 더 하는 행동 패턴으로서 그 결과가 가족이나 사회 등에 큰 손상을 초래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하고 최소 12개월간 증상이 나타나는 행동 패턴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WHO는 지난 5월 25일 ICD-11 발행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WHO는 게임이용 장애가 소수에만 해당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비록 소수일지라도 이들의 육체적ㆍ정신적 건강 및 사회적 기능에 변화가 있다면 치료 프로그램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WHO는 질병코드화를 계기로 게임이용 장애를 인지하고 관리하는 것에 대한 국제적 연구가 활성화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WHO의 언급처럼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화는 게임이용 장애 실태 파악, 예방 및 치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특히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해져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동ㆍ청소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 될 수 있다.”라고 전했다.

그런데 게임이용 장애가 당장 질병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ICD-11의 효력은 2022년부터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WHO 회원국으로서 ICD를 기반으로 질병을 분류하고 있으므로, 통계청이 5년마다 개정하고 있는 ‘한국표준질병ㆍ사인분류(이하 KCD)’에 ICD-11 내용을 반영하게 된다. 통계청은 2025년 KCD-8에 반영할 수 있고, 2026년부터 현장에서 실제 적용 가능할 것이고 말하고 있다.

WHO의 의결 소식이 전해지자 게임업계 및 관련 학회, 협회, 단체 및 대학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게임사들이 모인 한국게임산업협회는 WHO에 질병코드화 반대 의견을 개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질병코드화가 비록 총회에서 의결된 사안일지라도 ‘보건의료분야 표준화 협력센터’를 통해서 질병코드 삭제 및 수정이 가능하다고 한국게임산업협회는 보고 있다.

또, 통계청의 KCD 등재를 막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협회는 WHO 의결은 강제 사항이 아니라 권유 사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 게임업계만 반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을 비롯해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의 게임산업협회 및 단체들은 5월 27일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WHO의 결정이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결과가 되거나 의도치 않은 결과가 될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게임업계가 이처럼 크게 반발하는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면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질병코드화로 인해 게임에 대한 편견이 확대되면 결국 게임 규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있다.”라고 전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 ‘중독 예방ㆍ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 제정이 추진된 적이 있는데, 이때 게임 이용시간 제한, 내용 규제 강화, 예방 교육 실시, 아이템 거래 금지, 부담금 징수등 각종 규제 강화 방안이 검토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게임규제가 실제로 강화된다면 게임산업의 위축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2018년 12월에 발표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질병코드화 실행 이후 3년간 최소 5조 1,000억원에서 최대 11조 3,500억원의 산업 위축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청소년 보호법’ 제26조(심야시간대의 인터넷게임 제공시간 제한)에 근거한 강제적 셧다운제로 인한 위축보다 약 4배 정도 강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따라서 게임업계는 산업 위축이 자명한 질병코드화를 수용하기 힘들 수밖에 없으며, 반대 목소리는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WHO가 의결을 한 상황인 점을 감안해 보건의료계가 게임이용 장애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다종다양한 게임의 특성을 확실히 반영해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적절한 지침이 갖춰지지 않은 질병코드화는 과잉의료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즉, 정상적인 것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자연 치유 가능성을 차단하고, 게임이용 장애 뒤에 숨겨진 진짜 원인을 눈감아버리는 역효과를 줄 수 있다.”라며, “특히 일시적인 게임 과몰입 이용자를 게임이용 장애자로 낙인찍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질병코드화와 게임산업 발전이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대응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둘은 함께 갈 수도 있다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질병코드화는 게임에 병적으로 몰입하는 소수 이용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라며, “향후 게임에 대한 편견이 심화되는 것을 막고 불필요한 규제 강화를 하지 않는다면, 의료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소수 이용자를 돕겠다는 질병코드화에 반대할 이유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제언했다.

아울러 정부는 게임이용자를 적극 보호하기 위해 현행 제도들을 점검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는 이미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세밀하게 마련돼 있으며, 정부는 이에 근거해 게임 과몰입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고, ‘게임리터러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부터는 게임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중앙대학교병원 등 전국의 3차 의료기관 5곳에서 게임과몰입힐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부와 게임업계가 함께 규제 개혁에 나서야 한다.”라며, “게임업계가 자율 규제 등을 통해 자정 노력을 이어간다는 전제 하에, 정부는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표적 규제로 결제한도제, 강제적 셧다운제가 있다.”면서, “PC 온라인게임 결제한도제의 경우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게임물 등급 분류와 연결돼 일종의 ‘그림자 규제’로 작동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마침 지난 5월 27일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더 이상 등급 분류 신청 시 결제 한도를 확인하지 않겠다며 ‘등급분류 규정’ 개정안을 입안 예고했는데 개정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라며, “결제한도제를 시작으로 강제적 셧다운제까지 재검토한다면 게임업계의 우려는 어느 정도 불식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어 “ICD-11의 효력은 2022년부터 발생하고, 현장에서는 2026년부터 적용 가능할 것이다. 짧지 않은 이 기간 동안 대응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상황은 바뀔 수 있다.”라며, “의료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소수 이용자가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되, 정부는 게임업계와 함께 규제 개혁에 나서 게임업계의 우려가 불식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이 지속되도록 국회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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