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이 성범죄시 가중처벌하는 법안이 추진중인 가운데, 의사협회 뿐 아니라 보건복지부, 법무부, 국회 전문위원실 모두 과도한 측면을 우려하며 신중검토를 주문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지난 6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14일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돼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가해자가 피해자와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후 이를 이용해 성범죄를 범하는 것을 ‘그루밍 성범죄’라고 한다.

신 의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환자는 온전한 의사결정능력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이른바 그루밍 성범죄로부터 더욱 철저히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 의료인이 환자의 신뢰를 악용해 자기의 진료를 받는 환자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범하는 것은 의료윤리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의료체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일반적인 성범죄에 비해 죄질이 현저히 나빠 이를 엄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미국의 경우 23개 주에서 환자가 정신과전문의와 성관계에 동의했더라도 전문의를 처벌하게 돼 있다. 환자의 신뢰와 취약성에 대한 침해이며 정신과전문의가 지닌 권위의 악용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관련 법규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개정안은 의료인이 자기의 진료를 받는 환자를 대상으로 범한 성폭력범죄, 아동ㆍ청소년대상 성범죄에 대하여는 그 죄에서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자기의 진료를 받는 환자를 간음 또는 추행하는 경우에는 ‘형법’의 미성년자의제강간죄에 준해 처벌하도록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의료인의 진료환자에 대한 성범죄 예방 및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진료환자에 대한 성범죄 방지를 위한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나, 타 전문직종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며,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복지부는 또, 관련 규정 신설이 필요하다면 법 체계를 고려해 성폭력처벌법 등에서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법무부도 “의료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가중처벌할 경우 교사, 종교인, 직장 상사 등, 피해자와의 신뢰에 기반한 다른 직역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라며, 부정적 검토의견을 내놨다.

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형태는 단순 상담부터 입원치료까지 다양한 상황을 상정할 수 있으므로, 진료를 받는 모든 환자를 13세 미만 미성년자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헌법상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와 타 전문직과의 형평성을 위배하는 등 과도한 규제다.”라며, 법안에 반대했다.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실도 입법취지는 공감하지만,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의료인의 성폭력범죄 및 아동ㆍ청소년대상 성범죄 가중처벌’ 조항에 대해 “의료인이 신뢰를 악용하여 환자를 대상으로 성폭력범죄 및 아동ㆍ청소년대상 성범죄를 범하는 것은 의료인의 직업 윤리에 정면으로 반할 뿐만 아니라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인의 성폭력범죄 및 아동ㆍ청소년대상 성범죄를 예방하고 국민이 안전하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개정안의 취지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개정안과 유사한 입법례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8조는 보호, 감독 등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의 장과 그 종사자가 그 대상인 장애인 또는 아동ㆍ청소년에 대해 성폭력범죄를 범한 경우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전문위원실은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34조 및 제18조에 따라 의료기관의 장과 그 종사자가 자기의 보호ㆍ감독 또는 진료를 받는 아동ㆍ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범한 경우에는 이미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정안의 가중처벌 대상으로 성폭력범죄 외 아동ㆍ청소년대상 성범죄를 포함할 실익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유사하게 신뢰에 기초해 학생, 선수, 신자 등을 대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교사, 감독 및 코치, 종교인 등과 달리 의료인에 대해서만 가중처벌하는 것은 형평성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중처벌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환자와 의료인의 지위 관계에 있어 장애인 또는 아동ㆍ청소년과 그 보호ㆍ감독자와 유사한 수준의 우월적ㆍ종속적 지위관계가 인정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관련 입법례와 같이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위원실은 또, “법 체계를 고려할 때 성폭력범죄의 가중처벌에 관한 사항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일괄해 규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역설했다.

참고로,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해 자기의 보호ㆍ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한 성폭력범죄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으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박인숙의원안)’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아울러 판례는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해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관계에는 사실상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상황에 있는 경우까지 포함되고, 의료인과 환자 또한 이와 같은 관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해석되므로, 개정안의 취지는 박인숙의원 개정안에 일부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위원실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간음 또는 추행을 미성년자의제강간죄에 준하여 처벌’ 조항에 대해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자기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환자의 신뢰를 악용하여 환자를 간음ㆍ추행하는 경우 환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형법’ 제305조의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같이 강간ㆍ강제추행 등의 죄를 범한 것으로 의제해 처벌하려는 취지다.”라고 판단했다.

다만, 미성년자의제강간죄는 성인에 비해 의사능력 등이 부족한 미성년자를 특별히 보호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진료를 받는 환자를 일률적으로 미성년자와 동일하게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환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환자의 정상적인 교제를 방해할 우려도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현행 ‘형법’ 제303조제1항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제1항은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계 또는 위력으로 간음ㆍ추행한 경우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진료를 받는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 이미 현행법에 마련돼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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