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의 궁극적 목표는 최선의 진료…환자의 편익과 맞바꿔서는 안 되는 불가침 영역
대리처방 관련 의료법 시행령 등 개정안 입법예고 전문가 의견 충분히 반영됐는지 의문

최근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제17조의2 ‘처방전’ 조항의 신설(시행 예정일 2020.2.28.)에 따라 대리처방과 관련한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안을 제출하고, 시행단계를 앞두고 있다.

어떻게 보면 환자의 편의와 그동안 관행적으로 진행되어왔던 대리처방에 대한 완화조치로 보일 수 있어 마치 보건복지부가 의사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행예정인 의료법 제17조의2 및 시행령 제10조의2에 따르면, 의사는 환자 및 의약품에 대한 안전성이 인정되고, 환자의 의식이 없거나 환자의 거동이 현저히 곤란하고 동일한 상병에 대해 장기간 동일한 처방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한해 환자의 직계존속ㆍ비속, 배우자 및 배우자의 직계존속, 형제자매 또는 노인의료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사람 등을 대상으로 처방전을 교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의료법 시행령(안) 제10조의2(환자를 대리하여 처방전을 수령하는 사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일선 진료 현장에 있는 의사들이 인식하는 대리처방과 심각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법조문도 정상적으로 처리된 의사의 처방전을 수령하는 자를 열거하고 있을 뿐이다. 이 조항은 환자를 대신해 가족이나 환자와 관계되는 제3자를 매개로 처방전이 발행되는 규정으로 보이나, 법 조항의 문구는 그 내용이 아닌 대리처방의 수령으로 처방전을 환자대신에 누가 수령할 수 있는가를 명시하고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환자 진료 없이 처방전 발행 폭넓게 허용하는 곳 없어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것과 주의해야 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도 환자를 직접 진료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행하는 것을 폭넓게 허용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일부 국가는 애당초 처방전을 발행할 때 ‘재 처방’이 가능하도록 포함된 처방전을 허용하기도 하며, 처방행위는 전자기기나 종이에 한정하지 않고 전화로도 아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즉 의사가 약국에 전화를 하여 의사면허 번호와 제한된 환자정보를 알려주고 처방에 따른 약의 조제를 의뢰할 수도 있고 약을 수령하는 사람은 반드시 본인이 아니어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대리수령도 가능한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이 처방전 대리수령의 확대 조치는 처방전의 적법한 대리수령의 범위를 벗어난 일종의 불법 처방전의 발행을 묵인해 주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예기치 않게 발생한 사건과 사고에서 의사 또는 환자의 책임소재가 분명하지 않으며, 환자를 대신하여 처방을 받는 경우 수반되어야 할 환자의 동의 또는 동의를 생략할 수 있는 요건 등의 세부 절차가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처방전을 대리 수령하는데 있어 의료에 관한 환자 본인의 의사결정을 대리할 수 있는 자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대리처방과 관련된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은 사안이다.

의료윤리에서 ‘Surrogate Decision Making’에 관한 주제로서 의사결정의 대리에 포함된 많은 위험한 사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대리처방을 가족이나 제3자에게 의뢰하는 행동이 환자의 의사결정권의 보장과 인지능력(capacity)의 온전함, 그리고 어떤 약물이 처방되는 가에 대한 설명(full disclosure)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이런 경우 약사에게 돌아가는 ‘복약지도료’ 산정이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다. 복약지도를 제3자에게 위탁하여야 하는데 이럴 경우에 제3자가 복약지도료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도 가능해 보인다. 

▽의사 처방에 숭고한 생명윤리와 전문 직업성 담겨 있어 “절대 쉽게 판단할 문제 아냐”
관행적으로 연간 약 10만 건의 대리처방이 이루어진다는 확실치 않은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은 10만 건의 의료윤리에 위배되는 처방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나라도 환자의 거동이 불편하거나 의식이 없다는 이유로 대리처방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의사나 의사전문직 단체는 이러한 문제를 왕진이나 다른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진료권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올바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위한 해결방안의 첫 번째 단계는 왕진의 활성화가 최우선이다. 처방은 반드시 환자 상태에 대한 파악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런 환자상태의 파악을 가족이나 제3자를 통해 확인하는 것은 의학적 전문 직업성에 대한 심각한 훼손임에 틀림없다.

이런 경우 의사는 환자와 약국을 연계하는 단순한 서비스 조달업종(catering business)에 종사하는 중개인(broker)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왕진이 제격이나 왕진이라는 시간과 노동집약적인 의료 활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

의료예산 절감을 목표로 하는 집단은 환자의 편의를 위하고 관행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의료윤리에 반하는 활동을 서슴없이 권하며 어처구니없는 법안을 만들고 논의한다.

이런 법안이 과연 의사를 보호하고 환자의 편의를 도모하는지는 정말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

▽대리처방 조항 불가항력적 상황에 따른 대리수령 조항일 뿐 분명한 개념 정립해야
대리처방 조항은 처방전의 대리수령에 관한 조항이지 대리처방 행위에 대한 조항이 아니다.

대리처방 행위는 일종의 원격의료의 형태로 전화나 화상 등이 아닌 돈이 안 드는 가족이나 환자와 관련된 제3자를 이용한 일종의 변형된 원격의료 형태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본인부담 감액과 진료비 할인을 유도하는 편리한 수단으로 위장되어 얼마든지 의도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음을 통찰해야 한다. 차라리 원격의료는 환자를 간접적이나마 대면할 수도 있고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리처방은 환자를 대신한 다른 사람이 환자의 요구를 전하는 것인데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의사소통이 차단될 수 있다는 점은 의료에 있어서 매우 치명적인 악성 요인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리처방 조항은 원격의료와 같은 성격의 대리처방을 합법화하는 단계로 의사집단이 곧 싸구려 원격의료를 승인하는 것과 같은 교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나라들도 원격의료의 적용에 매우 신중하여 제한적이고 합당한 보상을 하고 있는데 슬그머니 원격의료가 간단하고 싸구려 의료로 둔갑하여 일상화되는 단계를 거치는 작업으로 보인다. 

대리처방의 위험성은 대리처방을 이용하여 가족이나 제3자가 다른 부차적인 이득을 추구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구성하여 처방전을 수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신질환자나 약물 중독자 그리고 인지능력이 저하 된 환자의 취약성을 악용할 소지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정신질환 치료제나 마약 그리고 각종 통증에 사용될 수 있는 약제들도 대리처방에 의한다면 다분히 환자개인의 문제를 넘어서는 사회병리로 연관될 수도 있다.

거동이 곤란한 경우로는 치매노인, 중증장애인, 정신질환 등의 사유로 의료기관 내원을 거부하는 사람, 교정시설 재소자나 군복무자 등을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윤리나 생명윤리에서 인간 신분상의 취약성(vulnerability)이 문제가 되는 집단을 법에서 선도적으로 규정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이들의 기본권 침해를 야기할 독소 조항으로 악용될 소지도 매우 커 보인다.

▽대리 처방은 극히 예외적 상황에서 ‘필요 선’이 돼야 의료의 가치 높일 수 있어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대리처방이 필요하고, 의사들은 대리처방 요청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는 사실과 대리처방 건수가 연간 10만 건이 넘는 다는 이야기를 차분히 다루어 볼 필요가 있다.

대리처방은 의사에게 분명히 정신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직접 보지도 않은 환자의 의무기록을 어떻게 작성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명쾌한 대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리처방 행위의 반윤리적인 요소, 직접 보지 않은 환자에 대한 불완전 진료가 주는 부담감이 큰 문제이다.

시행예정인 대리처방 조항에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어떠한 내용도 없어 보인다. 

의사에 대한 따듯한 배려로 보이는 대리처방 조항은 의사를 위한 정책이 절대로 아니다. 의료의 윤리성을 추구하는 의사단체가 극도로 경계하여야 할 함정이다.

대리처방과 같은 의료현장의 부담이나 관행은 정상적인 의료정책을 실현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분명한 대안이 존재한다.

이 문제는 정확히 표현하면 이른바 ‘미 충족 의료수요(unmet healthcare needs)’가 존재하는 것으로서 합법적이고 윤리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합리적인 왕진제도나 제한된 원격의료도 현대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최근 들어 정부가 강조하는 커뮤니티 케어나 만성질환 관리제 등 통합의료에 대한 수요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해결 방안이 이미 있음에도 정부가 스스로 반윤리적으로 우회하는 정책을 주도한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행정부서의 전문성 문제가 다시 언급될 수밖에 없고 좋지 않은 관행을 환자의 편리성으로 포장하고 지지하는 것도 문제로 보인다. 

▽환자의 편익만을 앞세워 원칙이 흔들린다면 반윤리적 의료행위로 가치기반 훼손 우려
대리처방 조항은 대리처방 행위에 대한 정의도 없고 대리처방에 대한 명확한 법적 윤리적 검토 없이 진행된 결과 반윤리적 의료의 위험요소가 분명히 존재한다.

대리처방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였을 때 여전히 책임소재도 불분명하고 의사가 보호받는 장치도 없다. 다만 행정규제 및 처분의 수위가 낮아질 수 있는 기만정책처럼 보인다.

대리처방의 문제는 대리처방 행위 자체가 먼저이며 수령은 그 이후의 행동이다. 차제에 대리처방의 의료행동과 처방전 전달을 분리하고 정상적 처방전은 사람이 아닌 전자기기의 사용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처방전 대리수령에 관한 개정 의료법 조항은 미 충족 의료의 해결로 재해석이 필요하고 해결책은 정상적인 의료정책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의사협회는 전문직 단체의 표본으로 반윤리적 문제가 포함된 어떠한 법과 정책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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