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5 총선에서 압승한 현 정권은 불과 몇 달 전에 폐기된 ‘보건의료에 관한 사안’을 다시 관 뚜껑을 열고 꺼내서 새 생명을 불어넣어 재생중이다.

압승의 후유증이 중증 권력 비대화 증세로 발현하여, 사람으로 따지자면 이미 과도한 힘의 발산으로 정상 범위를 초과하는 예상치 못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되어 이에 마땅한 진단과 처방이 매우 힘든 상황과 같아진 것이다.

마치 무소불위 같은 자신들의 힘만 믿고 의존한 나머지 신중하고 심도 있는 논의와 검토 보다는 즉흥적이고 근시안적인 판단으로 국가의 중차대한 사안을 표로 밀어붙이고 있는 꼴이다.

표로 밀어 붙이든, 강력한 군대의 힘으로 밀어 붙이든, ‘밀어 붙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칭 민주화 정권이라는 현 정권의 독재적인 요소와 함께 뻔뻔한 오만함과 무모함까지 크게 우려케 하는 볼썽사나운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의사집단의 파업 선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평소에 의료계를 백안시하며 줄곧 대화하기를 꺼려했거나 피해왔던 정부는 총리를 앞세워 의료계와 대화하겠다며 파업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요지는 의사파업의 결과는 국민피해라는 주장이다. 현 정권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정책은 ‘전문직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이루어낸 정책이었고, 의사 정원 증가나 신설의대 설립은 아예 전문직과의 편 가르기를 통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획하여 만들어낸 결과로써 그동안 전문직과는 어떤 논의도 사전에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정권의 입맛에 찰싹 들어맞는 일부 관변학자들의 주장만이 전문직을 대표하는 의견으로 대체되어 수용되었다.

▽현 정권 의료정책 근시난시 조급증까지 겹쳐 툭하면 ‘의료인 덕분’ 뻔뻔한 립 서비스
현 정권의 심각한 ‘근시증세’는 향후 10년간 의대정원 증가로 인한 의료비 증가나 신설의대 설립으로 집행되는 불필요한 예산의 낭비는 국민의 ‘피해’가 아닌 ‘혜택’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몇 해 전, 문재인 정권 취임 후 보기 힘든 황금연휴 기간을 맞아 샌드위치로 낀 근무일 하루를 임시공휴일로 정하여 우리 사회는 총 9일간의 꿈결 같은 긴 휴식기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잠깐 동안의 내수 진작 효과와 일시적으로 상승했던 정치적 지지도를 맛봐서 그런지 이번에도 8월 17일 하루를 코로나 사태로 지친 의료인의 휴식을 위한 명분으로 ‘임시 공휴일’로 정하여 국민 모두에게 4일간의 연휴를 지낼 수 있도록 결정하게 되었다고 알리고 있다.

의료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조치가 성은이 망극할 지경인지, 아니면 의료의 속성을 모르고 한낱 ‘의료인 팔아먹기 용’으로 둔갑시킨 기획물이고 꼼수인 것이지, 그 속내가 참으로 궁금하다. 이미 8월 17일 예약된 환자들로 많은 의료기관은 휴무를 고민하며 그 이후에 닥칠 업무 로딩을 염려하고 있다.

진정으로 의료인을 위한다면 의료기관을 위한 특별 공휴일을 제정하면 좋았을 것을, 쉬지도 못할 의료인을 위한 국민 공휴일로 선포하여 지정했는지, 좌우지간에 무엇을 해도 빠짐없이 표를 의식한 이벤트에 능한 정권임에는 틀림없다.

정부는 공휴일 제정으로 인한 의료기관의 휴무는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간다고 생각하지 못하는지, 의사들이 스스로 선포한 총파업 투쟁으로 인한 휴무일은 국민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간다는 총리를 앞세운 주장은 무슨 근거의, 무슨 사고방식의 논리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진료실 밖 투쟁대열로 내모는 의료정책 진정성 없는 정부 제스처 해결기미 없어
지난 현 정부 초기에 있었던 9일간의 황금연휴 기간에 휴무에 들어간 의료기관도 일부 당직자를 제외하고 통상적인 휴일에 따른 조치로 응급실과 일부 의료기관은 정상적으로 근무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9일 연휴기간 동안에 특별히 사망률이 증가했다거나 진료를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오로지 집중됐던 국가적 관심사는 내수가 얼마나 활성화 되었는지, 그리고 장기간의 휴무에 의한 정치적 치적으로 포장되고 홍보되었다.

이런 정권이 하루 동안의 의사 파업 선언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간다며 파업을 벌이기도 전에 우려를 표하고 의료계의 자제를 당부하며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설레발을 치고 나서는 모양새가 왠지 떨떠름하게 다가온다.

전문가 단체와 진정성 있는 대화와 국가 정책을 논의할 생각과 의지가 있었으면 벌써 했을 터인데, 다시 또 전문직 사회를 기만하려는 노골적인 움직임이 감지되는 느낌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9일간의 장기간 휴무에도 평소 사망률에 변화가 없듯이, 의사파업의 기간에도 별 다른 변화는 없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다양한 논문으로 정리되어 등재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약간의 사망률 감소가 믿기 어려운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2014년에서 2016년 사이 영국의 젊은 의사들은 수차례 파업을 단행한바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영국의 모 정신과 교수는 문헌고찰을 통하여 이미 캐나다와 미국의 학자들의 공동연구로 저명한 학술지인 ‘Social Science and Medicine’에 논문을 발표하였다는 사실을 다시 부각시키며, 의사파업 기간 중 환자의 사망률이 낮아진다는 흥미로운 사실에 대하여 심리학적 해설을 시도하여 관심을 끌었다.

미국의 Emory대학과 George Town대학, 그리고 캐나다의 McMaster대학이 공동으로 진행한 파업의 연구를 살펴보면, 1976년에서 2003년 사이에 발생한 의사파업에 대하여 매우 포괄적인 연구를 진행하였다.

파업 기간도 최소 9일에서 17주간의 다양성을 보였으나 파업기간 중 환자 사망률은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약간 낮아진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선진국 의사파업 일상 파업기간 사망률 변동 없어 낮아지는 사례도 논문에 보고
한 사례로 1976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LA지역에서 급상승하는 의료사고 보험료에 대하여 약 50%의 의사들이 응급의료를 제외하고 파업이나 태업을 단행하였는데, 그 결과는 의사의 단체적 행동이 환자 사망을 예방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사망률은 지난 5년간의 사망률과 비교하였는데, 파업 1주차에서 7주차까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사망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후 파업이 종료되자 다시 사망률은 평상시 수준으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장기간의 파업 사례에서도 그 결과는 동일하였다. 이스라엘은 1983년 3월 2일부터 6월 26일까지 파업을 벌였는데 1982년 동일기간 동안 대조해본 결과 사망률의 변화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보고되었다.

당시 1만 1,000명의 의사 중 8,000명이 참가한 대규모 파업이었음에도 결과는 같았다고 한다.

이 연구에서는 총 7건의 파업이 연구대상이었는데 그 중 4건은 사망률 감소를, 그리고 3건은 사망률의 변화가 파업 전후와 비교하였을 때 차이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파업기간 중 환자의 사망률 감소는 여러 가지 추측을 불러온다. 우선 의사가 환자의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생각도 쉽게 해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의사 공급과잉인 나라에서 의사수가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미미하다고 판단하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그렇지만, 간호사가 파업한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미국 뉴욕 주의 1984~2004년 20년간의 자료 분석에 의하면, 간호사가 파업한 경우 환자 사망률은 무려 19.4% 포인트 급증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핵심은 간호사가 없을 경우에 발생하는 질 낮은 의료가 문제가 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대의료는 ‘팀에 의한 의료’라는 것을 실감케 하는 연구 자료임에 틀림없다. 의사가 시행하는 여러 가지 처치는 다양한 직종의 협업에 따라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로써, 현대적 의료에서 단순히 의사만 배치해서 얻을 수 있는 의료성과의 한계를 간접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 문제를 의사정원과 연결하였을 경우 단순한 의대정원 증가의 해결책으로는 의료성과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200개가 넘은 간호대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를 제때 구하지 못하고 있는 의료기관의 당면한 현실적 문제에서 단순히 무작정 의사 수만 양적으로 크게 늘린다고 해서 정부가 기대하는 의료성과가 좋아질 리는 만무한 것으로 깊이 통찰해볼 수 있다.

▽사회 전문계층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아 관치 의료독재 획책하다 의료망국의 길로
최근 코로나 사태에도 프랑스 의사들은 집단 시위를 벌였다. 직능 별로 다양한 조합을 구성하고 있는 프랑스는 의사 노조의 현황만 파악하기도 그렇고 그 내부적인 면을 속속들이 이해하는데도 힘들어 보인다.

프랑스 의사노조는 역사가 길어서 20세기 초부터 이미 파업을 단행하였다. 현재까지 약 300차례 이상의 의사파업이 세계적으로 결행된 바 있다.

이미 선진 유럽에서는 의사 파업이 일상화 된 사안으로 의사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과 신분보장을 위한 것이 주된 사안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개인에 의한 자유업에서 점차 피고용인 신분의 의사가 증가함에 따라 고용주나 의료보험기구, 그리고 정부 등에 의한 의료가치의 수호 등이 의사집단에게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의료가 사회 모두의 참여로 이루어진다는 ‘social practice’의 개념이 현재의 대한민국과 같이 이데올로기의 충돌 속에서는 다양한 이해당사자에 의하여 의료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될 여지가 농후하다.

이런 사회적 상황은 이제 의사의 파업을 일상화 시키거나 의사단체도 조합의 기능을 극대화할 필요성을 점점 느끼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 파업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는 견해에 반하여, 역설적으로 민주화 선진화 과정에서 의사단체도 반드시 겪어야 할 단계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사회적 경제적 급속 성장에 아직도 미처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보건의료의 문제가 정치적 미성숙으로 파업 이외에 이렇다할만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파업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는 없어 보인다는 것이고, 이것은 곧 의사 파업의 한계를 의미하기도 하며 파업에도 의사단체는 응급 상황과 기본적인 의료에 대한 ‘보존적 책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의사 파업으로 인해 발생할 진정한 피해의 우려는 파업에 의한 의-정 간의 대화 국면에서 정부 측으로부터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거나, 의료 문제에 있어서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문제를 외면하거나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경우이다.

이 같은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전국 13만 의협 회원에게 좌절감만을 증폭시켜 발생하게 될 돌이킬 수 없는 신뢰감의 상실과 인내심의 한계를 뚫고 터져 오르는 분노가 태풍처럼 휘몰아 칠 것이다.

매일매일 전쟁터와도 같은 사선에서 생명을 보듬고 있는 의사들에게 ‘오죽하면’이라는 의료독재로 잉태된 강한 저항감으로 대정부 투쟁의지가 용암처럼 폭발하여 흘러넘치게 하지 않게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참고문헌
https://www.psychologytoday.com/gb/blog/slightly-blighty/201510/why-do-patients-stop-dying-when-doctors-go-strike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