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규제 해소 정책에 다시금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특히 최근 규제 샌드박스에 DTC유전자 분석 및 건강서비스를 포함한 것에 대해 시민단체는 개인건강정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1일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회’를 개최하고, 규제 샌드박스의 일환으로 ‘DTC 유전체분석을 통한 맞춤형 건강증진 서비스’ 등, 4개 안건에 대해 특례를 부여했다.

산업부는 이번 심의에 대해 우리나라 최초로 규제 샌드박스를 산업현장에 실제로 적용하는 기념비적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규제 샌드박스란 새로운 제품ㆍ서비스에 대해 실증특례 및 임시허가를 통해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시켜주는 제도다.

이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소비자 직접의뢰(DTC, Direct To Consumer) 유전체분석을 통한 맞춤형 건강증진 서비스 실증특례’다.

(주)마크로젠은 개인 유전체 분석을 통해 사전에 질병 발병 가능성을 인지하고 예방할 수 있는 건강증진 서비스에 대해 실증특례를 신청했다.

실증특례는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사업화하기에 앞서 안전성 등에 대한 시험ㆍ검증이 필요한 경우, 기존 규제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구역ㆍ기간ㆍ규모 안에서 테스트를 하도록 해주는 우선 시험ㆍ검증 제도이다.

현행법은 병원이 아닌 비의료기관이 직접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소비자직접의뢰(DTC) 유전자검사 항목은 12가지(체질량지수, 중성지방농도,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색소침착, 탈모, 모발굵기, 노화, 피부탄력, 비타민C농도, 카페인대사 등)로 제한하고 있어, 유전자 검사기관은 고객에게 한정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심의 결과, 기존 12개 외에 13개 항목에 대한 유전자 검사 실증이 추가로 허용됐다. 추가된 서비스제공 예정 질환 13개는 ▲만성질환 6개(관상동맥질환, 심방세동, 고혈압, 2형당뇨병, 뇌졸중, 골관절염 ▲호발암 5개(전립선암, 대장암, 위암, 폐암, 간암) ▲노인성질환 2개(황반변성, 파킨슨병) 등이다.

당초 마크로젠은 15개 질환에 대한 실증을 신청했으나, 유전인자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한 유방암, 현재까지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치매는 결과 활용도 등을 고려하여 서비스 항목에서 제외했다.

다만, 후발성 알츠하이머 치매에 대한 실증특례 부여는 전문위를 거쳐 허용여부를 재검토할 예정이다.

산업부는 이번 실증특례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심도깊은 논의 끝에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충분히 고려해 질병예방 및 의료기술 수준 향상 등을 위해 부여된 것으로, 인천경제자유구역(송도) 거주 성인 2,000명 대상으로 2년간 제한된 범위에서 연구목적으로 진행되는 실증사업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공용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에서 실증계획의 구체적 내용을 검토한 후 사업을 추진한다고 전했다.

산업부는 “이번 유전체 검사 결과는 검사를 의뢰한 각 개인에게만 결과가 제공된다. (주)마크로젠은 한국인터넷진흥원으로부터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 관련 인증을 획득하고 있는 만큼, 개인정보보호도 철저히 관리할 계획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실증으로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등 해외에서 제공하고 있는 유전체 분석 서비스 활용의 문턱을 낮춰 바이오 신시장 확대뿐만 아니라 국민건강 증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전했다.

해외에서도 미국은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대장암 등 12개 질환에 대해 소비자직접의뢰(DTC) 유전자검사를 허용하고 있으며, 소비자직접의뢰(DTC) 방식의 유전자검사에 대해 별도 규제가 없는 일본은 약 360개, 중국은 약 300개 항목에 대한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이번 발표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더욱 적극적인 규제 행정을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주재한 국무회의 자리에서 “솔직히 이번 규제 샌드박스 승인 사례를 보면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런 정도의 사업이나 제품조차 허용되지 않아서 규제 샌드박스라는 특별한 제도가 필요했던 것인지 안타깝게 여겨졌다.”라며, 각 부처의 소극적인 규제 행정을 질타했다.

문 대통령은 또, “우리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해 마음껏 혁신을 시도하려면 정부가 지원자 역할을 단단히 해야 한다. 1만 6,000여 개에 달하는 각 부처 훈령, 예규, 고시, 지침 등 행정규칙에 대해서도 규제 측면에서 정비할 부분이 없는지 전반적으로 검토해 달라.”면서, 행정규칙 전면 재정비를 지시했다.

지난 13일 발표된 ‘민간 일자리 창출 지원 및 공공기관 일자리 확대방안’에도 ‘유전체 분석을 통한 맞춤형 건강증진 서비스’가 규제혁신을 통한 민간 투자촉진 및 고용창출 사례로 포함됐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제8차 경제활력대책회의 겸 제6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일자리의 보고인 서비스업은 보건ㆍ물류ㆍ콘텐츠ㆍ관광 등, 4대 유망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획기적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라고 강조했다.

기재부는 또, 신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핵심규제를 해소하겠다며, 이번달 안에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제공범위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해 IT와 의료를 접목한 스마트 헬스케어 제품ㆍ서비스 출시를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산업혁신을 통한 민간 일자리 창출여건 강화를 위해 신산업의 경우 4월까지 제약ㆍ의료기기 및 디지털 헬스케어 등에 대한 규제정비ㆍ전략투자 방안ㆍ외국인환자 유치 등, 바이오헬스 경쟁력 제고 방안을 마련한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시민단체는 반발하고 나섰다. 규제 샌드박스, DTC유전자 분석 및 건강서비스 포함은 국민의 개인건강정보 상업적 활용을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이하 건세)는 지난 13일 성명을 통해 즉각 중지를 촉구했다.

건세는 “이번 규제 샌드박스 대상선정에 있어 복지부는 비의료기관에게 DTC유전자 검사를 질병유전자 검사 13개 항목으로까지 확대 허용했으며, 질병 예방을 위한 건강 및 식단 관리 등 건강증진 서비스도 포함했다.”라며, “이는 국민의 건강정보를 상업적 활용의 대상으로 삼고 시장거래를 허용하겠다는 의도이다. 영리 목적의 의료민영화를 위해 인천경제자유구역 시민 2,000명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시범사업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건세는 마크로젠에 대해 “LG생활건강과 공동 출자해 합작법인 ‘젠스토리(Genstory)’를 설립해 2017년부터 DTC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비의료기관인 민간업체에서 2016년부터 DTC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일반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으나 유전자 검사 장비 및 검사기관에 대한 질관리, 의뢰인에게 검사 결과를 전달하는 방법 및 가이드라인, 개인건강정보 보호관리규정 등과 관련하여 별도로 마련된 법적 및 제도적 장치는 없다.”라고 비판했다.

관련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오히려 ‘마크로젠은 개인정보보호도 철저히 관리할 계획이다’는 문구 하나로 민간기업에 국민의 개인건강정보 보호 및 관리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건세는 “DTC 유전자 검사 질관리, 개인건강정보 보호 및 관리에 대한 정부 차원의 규제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규제 샌드박스에 DTC 유전자 검사항목을 질병유전자 검사항목으로까지 확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건강증진 서비스 제공을 허용한다는 것은 민감정보인 개인건강정보를 민간이 활용하도록 허용한다는 의미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전자 검사업체는 DTC 유전자 검사와 건강증진 서비스 제공이라는 명분으로 국민 개인의 유전자 정보와 생활습관정보를 손쉽게 수집 및 집적할 수 있고 이를 분석 및 가공해 빅데이터 플랫폼 등을 구축하는 등 바이오 및 제약산업에 활용될 수 있는 개연성은 상당히 크다.”라고 우려했다.

건세는 “더군다나 DTC유전자 검사에 대해 연구목적이라고 선을 긋고 있으나, 건강증진 서비스까지 허용하는 것은 이미 연구목적을 벗어난 산업적 활용을 전제한 조치라고 판단된다.”라며, “산자부는 DTC를 질병유전자 검사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질병 예방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DTC유전자 검사만으로는 질병유전자 감수성에 대한 정확한 위험도 예측(odds ratio)이 어렵다. 또한 만성질환에 보다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식습관이나 환경적인 요인 등에 대한 관련성은 평가가 불가능하다.”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특히, 질병 감수성을 예측하기 위한 유전자 검사는 엄격한 수준의 관리 및 효용성과 과학적 타당성이 요구된다.”라며, “인간은 약 3만~4만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유전자의 구조 및 기능에 대한 이해와 질병과의 연관성이 확인되면서 6,000여 종의 단일 유전자 이상으로 인한 유전병에 대한 임상적 진단이 가능해졌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DTC유전자 12개 항목과 관련된 유전자는 46개에 불과하며, 향후 150개로 확대된다고 하지만, 150여 개 유전자 만으로 질병의 위험도를 신뢰하기에는 과학적 타당성이 상당히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건세는 “이러한 근거들로 판단해 볼 때, DTC유전자 검사항목이 13개로 확대됐다 하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건강증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과연 어떠한 유용성이 있는지 의문이다.”라며, “질병유전자 검사결과를 바탕으로 의료행위가 아닌 식단 및 운동 등의 건강관리 가이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말은 전혀 설득력도 없고 앞뒤가 맞지 않는 괴변에 불과하다.”라고 역설했다.

또한 건세에 따르면, 미국 FDA는 2009년부터 DTC 유전자 검사와 관련해 부정확한 검사 결과에 의해 야기되는 위해성을 방지하기 위한 규범을 마련하고 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관련 업체들로 하여금 유전자 검사 결과가 과학적으로 정확하고 검사의뢰인의 건강에 유해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해 왔다.

2013년에는 DTC 유전자 검사의 정확도와 불필요한 치료 유발 및 약물 오남용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유전자 분석기업에 DTC 유전자 검사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건세는 “이 같은 규제 방향은 전체 유전자 중 어떤 부분이 질병 발생과 연관성을 갖는지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은 반면, 질병 발생의 공포에 의존한 오남용이 오히려 더 위해 하다는 인식에 근간을 두고 있다.”면서, “이 같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규제 기반을 흔드는 규제샌드박스 적용과 DTC 유전자 검사 확대는 즉각 중지돼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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